조선시대에는 울산도호부(蔚山都護府) 관할의 동면(東面)에 속해 있었다. 세종 때 삼포(三浦)가 개항되면서 이곳 염포(鹽浦)에 왜인(倭人)이 드나들게 되었다. 삼포왜란 후 염포의 왜인들이 물러났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왜인들이 이곳을 군사기지로 삼았다.
조선시대에는 부근 일대가 국가 경영의 목장으로 이용되었고, 천내봉수(川內烽燧)는 남쪽의 가리산(加里山)과 북쪽의 남목천봉수(南木川烽燧)를 이어주면서 동해안을 따라 올라갔다. 울산에 경상좌도병마절제사영(慶尙左道兵馬節制使營)이 있었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중요시되던 곳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상화잠동ㆍ하화잠동을 합치어 방어리라 하였다. 1931년방어진면, 1936년방어진읍으로 승격되었다. 1962년 울산시가 생기면서 방어진출장소가 설치되어 이에 속하게 되었다. 출장소는 1988년동구(東區)로 승격하여 방어동이 되었다.
방어진의 지명 유래는 이곳에서 방어(魴魚)가 많이 잡힌다는 데서 생겼으며, 광복 전에는 일본인들에 의하여 어항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1917년 방어진등대가 설치되었고, 천연적인 양항인 방어진항에는 방파제가 축조되었다. 방어진항은 울산만의 방파제 구실을 하고 있으며, 현재는 울산 시민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울산시가 공업도시로 급속히 성장하면서 태화강(太和江) 서쪽 지역이 개발되고 있으나 방어진 지역은 지형적인 제약으로 한계성을 갖는다. 염포산(鹽浦山, 174m) 줄기가 해안까지 뻗치면서 해식애(海蝕崖)를 이루고 있어 대단위 임해공업단지의 조성이 어렵다. 이 지역은 앞으로 자연 녹지대로 보존되면서 쾌적한 주거 공간으로 개발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