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인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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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인근
현대문학
인물
일제강점기 「죽지 못하는 사람들」 · 「금비녀」 · 「인생극장」 등을 저술한 소설가. 시인.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9년(고종 36) 12월 29일
사망 연도
1975년 1월 1일
본관
온양
출생지
충청남도 예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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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죽지 못하는 사람들」 · 「금비녀」 · 「인생극장」 등을 저술한 소설가. 시인.
생애 및 활동사항

1899년 충청남도 예산 출생으로, 호는 벽파(碧波) · 춘해(春海)이다. 1910년 온양공립보통학교(溫陽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한 후 1914년 공주 영명학교(永明學校)를 졸업하였다. 서울로 올라와 1917년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 5학년에 편입한 후 이듬해 졸업하였다. 잡지 『창조』 제6호에 「눈 오는 밤」을 투고하며 등단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 귀국하였고, 1920년 평안북도 영변에 있는 숭덕중학교(崇德中學校) 교감으로 근무하였다. 1922년 일본으로 재차 건너가 주오대학[中央大學] 독문과에서 수학하였으며, 1923년 8월 『신생명』에 시 「하늘과 바다」를 발표하였다. 1924년 10월 귀국해 종합 월간 문예지 『조선문단(朝鮮文壇)』을 창간하고, 1925년 9월 「마지막 편지」를 발표하였다. 『조선문단』은 1927년 폐간되었다.

1929년 기독교신보사(基督敎申報社)에 입사해 기독교 소설 「새 나라를 찾아서」를 연재하였고, 1929년 5월 평양에서 『문예공론(文藝公論)』을 발행하였지만, 같은 해 7월 통권 3호로 종간되었다. 1931년 『신생(新生)』의 편집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1932년 11월부터 1933년 6월까지 『동아일보』에 장편소설 「마도(魔都)의 향불」, 1933년 6월부터 11월까지 『매일신보』에 「방랑의 가인(歌人)」 등을 연재하면서 대중작가의 명성을 얻었다. 1935년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서 발간하는 잡지 『시조(時兆)』의 편집장 등을 역임하며, 1935∼1936년 장편소설 「홍운백운(紅雲白雲)」, 「쌍홍무(雙紅舞)」, 「새벽길」 등을 발표하였다.

1939년 10월 국민문학의 건설, 내선일체의 구현, 총력전 수행에 적극 협력할 것을 목적으로 설립한 조선문인협회 발기인으로 참여하였으며, 1940년대 초부터 친일적인 집필활동과 방송활동에 의욕을 보였다. 12월 『삼천리』에 「문사부대와 지원병」이라는 주제의 글을 기고하였다. 『삼천리』 1941년 1월호에 「신동아 건설의 작품에」를 발표하고 같은 해 11월 조선문인협회 주최로 열린 내선작가간담회에 참석하였다. 1943년부터 경성방송국 촉탁으로 활동하며 4월 조선문인보국회(朝鮮文人輔國會)가 발족하자 6월부터 소설 · 희곡부회 상담역을 맡았다. 같은 해 8월 『매일신보』에 징병제를 지지하는 「눈물겨운 자랑」을 기고하기도 하였다. 1943년 12월부터 1944년 5월까지 『방송지우(放送之友)』에 장편소설 「모자(母子)」를 연재하였다.

해방 후 1946년 3월 전조선문필가협회 결성에 참여하였고, 1949년 12월 한국문학가협회에도 관여하며 애정과 추리 관련 대중소설을 발표하였다. 1954년에는 영화사 춘해(春海) 프로덕션을 설립하였고, 1960년 잡지 『신생활』을 운영하였다. 1975년 1월 사망하였다. 주요작품 중 단편으로는 1923년 「분투(奮鬪)」, 1924년 「어머니」 · 「비오는 날」 · 「살인(殺人)」, 1925년 「죽지 못하는 사람들」, 1926년 「외로움」 · 「최박사(崔博士)」 · 「노총각」 · 「강신애(康信愛)」 · 「자기를 찾은 자」, 1927년 「반동(反動)」 · 「순간의 낙원」 · 「살인방화(殺人放火)」 · 「백의인농민(白衣人農民)」 · 「금비녀」, 1930년 「행진곡」, 1932년 「울며 세배 받는 이」 · 「눈물 지팡이」 · 「바다를 건너서」 · 「모뽀이 모껄」, 1933년 「평화로운 봄」, 1935년 「박철(朴哲)」 , 1936년 「그 후의 방랑의 가인(歌人)」, 1941년 「은행나무」 등이 있다.

중편으로는 1939년 「슬픈 해결(解決)」이 있으며, 장편으로는 1934년 「마도(魔都)의 향불」, 1935년 「화심(花心)」, 1936년 「춘몽(春夢)」, 1939년 「쌍홍무(雙紅舞)」 · 「방랑의 가인(歌人)」, 1942년 「젊은 아내」, 1944년 「동방의 새봄」, 1947년 「명일(明日)」, 1955년 「여인풍경(女人風景)」, 1954년 「인생극장(人生劇場)」, 1955년 「청춘야화(靑春夜話)」, 1956년 「동방춘(東方春)」 등이 있다.

이밖에 1932년 희곡 「금십자가(金十字架)」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친일문학론』(임종국, 민족문제연구소, 2013)
『친일인명사전』2(민족문제연구소, 2009)
『한국근대문인대사전』(권영민, 아세아문화사, 1991)
『한국문단사』(김동인 외, 삼문사, 1982)
「방인근의 기독교 소설」(신춘자, 『인문과학논총』2,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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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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