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6년(흥덕왕 11) 12월흥덕왕이 후사(後嗣)가 없이 죽은 뒤 근친 왕족 사이에 왕위 계승분쟁이 일어났을 때 그는 시중(侍中) 김명(金明 : 뒤의 민애왕), 아찬(阿飡) 이홍(利弘)과 함께 제륭(悌隆 : 뒤의 희강왕)을 추대하였다.
이 때 제륭일파는 상대등(上大等) 균정(均貞)을 받드는 우징(祐徵 : 뒤의 신무왕)·김양(金陽) 일파와 궁중에서 싸움을 벌였는데, 그는 활로 김양의 다리를 쏘아 맞추는 등 큰 공을 세웠다. 균정이 난중에 살해됨에 그 일파는 도주하여 마침내 제륭이 즉위하였다.
배훤백은 희강왕과 이어 그를 타도하고 즉위한 민애왕정권하에서 활약하였다. 839년 정월 민애왕이 청해진(淸海鎭)의 군사를 끌고 쳐들어온 우징 일파에 의하여 타도된 뒤에는, 김양으로부터 지난날의 죄과를 너그러이 용서받아 목숨을 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