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북천일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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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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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신 정충신이 북청으로 귀양가는 이항복을 수행하며 기록한 일지. 공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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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문신 정충신이 북청으로 귀양가는 이항복을 수행하며 기록한 일지. 공무일기.
내용

1책. 목판본. 광해군의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모사건으로 북청에 귀양갈 때의 수행일기이다. 그 뒤 67년이 지난 1685년(숙종 11) 이항복의 증손 이세구(李世龜)가 교정하고 북청부사 정내상(鄭來祥), 함경도관찰사 이수언(李秀彦) 등이 협력해 간행하였다.

일기 끝에 광해군이 장차 폐모하려 할 때 이항복이 헌의(獻議)한 수초(手草)가 수록되어 있다. 책머리에는 1686년에 쓴 좌의정 남구만(南九萬)의 서문(序文)이 있고, 책 끝에는 1685년에 쓴 이세구의 「각북천일록발(刻北遷日錄跋)」과 1686년에 대제학 이민서(李敏敍)가 쓴 발(跋)이 수록되었다.

일기는 1617년(광해군 9) 11월 1일에 시작하여 다음해인 1618년 8월 7일까지의 기록이다. 정충신이 이항복을 수행해 배소에서 죽은 그의 유해를 포천에 모셔 안장하기까지의 내력을 상세히 수록하였다.

일기 앞부분은 이항복이 폐모론의 불가함을 상소한 내용에 대한 대북 일파(大北一派)의 반박의 글을 싣고 귀양가는 길에 한파에 시달려 병든 몸으로 괴로워하는 모습, 인근 고을 수령들이 나와 억울하게 귀양가는 이항복을 전송하며 시국을 한탄하는 장면 등을 기록하였다.

이 밖에 북청 배소에서 찾아오는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배소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정경과, 유해가 운구될 때 도로 인근 관민들의 슬퍼하는 장면 등을 기록하였다.

폐모론이 불의에서 나온 것이어서 이를 반대하다 배소에서 죽은 이항복의 사실을 담은 이 일기는 그 뒤 필사본으로 널리 일반에 읽혀졌다. 1977년 조용승(曺龍承)이 『백사집』을 영인 간행할 때에 이 일기를 부록으로 수록하였다.

참고문헌

「이항복(李恒福)」(김성균, 『한국(韓國)의 인물상(人間像)』 1, 신구문화사, 1965)
「이항복(李恒福)」(차문섭, 『인물한국사(人物韓國史)』 5, 박우사,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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