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암성 ()

목차
관련 정보
랴오닝 백암성 전경
랴오닝 백암성 전경
인문지리
유적
중국 요령성 요하(遼河)유역에 있었던 삼국시대 고구려의 성곽.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중국 요령성 요하(遼河)유역에 있었던 삼국시대 고구려의 성곽.
내용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입했을 때 안시성(安市城)전투와 관련이 있는 지명이다. 지리적으로 요하(遼河)유역에 위치하여 고구려와 당나라의 국경지대에 있었던 성이었다. 고구려의 양원왕이 백암성을 개축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당태종이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입하여 국경지대의 여러 성을 점령한 후 요하 동쪽에 있는 요동성(遼東城)을 격전 끝에 점령하였다. 그 뒤 공격 목표를 백암성으로 정하여 성의 서남부를 공격하자 성주 손대음(孫大音)이 항복하여 성을 내주었다. 그 뒤 당태종은 안시성전투에 패하여 귀국했지만, 백암성을 위시한 10여개 성과 요주(遼州)ㆍ개주(蓋州)ㆍ암주(巖州) 등의 3개 주가 당나라 영토에 편입되었다.

백암성은 당시 암주에 속하는 성이었고, 발해 때에는 노주(盧州)에 소속된 지역이었다. 백암성은 남만주평야의 하천유역에 있다는 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고구려 때에 돌궐족의 침입을 여러 번 받은 적이 있다.

백암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백’이 ‘밝다’ㆍ‘크다’는 의미를 가지므로 ‘큰 산’이 된다. 이는 평야지역의 구릉을 배경으로 발달된 지명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대동지지(大東地志)』
『한국지명연혁고(韓國地名沿革考)』(권상로, 동국문화사, 1961)
관련 미디어 (1)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