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태종이 고구려를 침입했을 때 안시성(安市城)전투와 관련이 있는 지명이다. 지리적으로 요하(遼河)유역에 위치하여 고구려와 당나라의 국경지대에 있었던 성이었다. 고구려의 양원왕이 백암성을 개축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당태종이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입하여 국경지대의 여러 성을 점령한 후 요하 동쪽에 있는 요동성(遼東城)을 격전 끝에 점령하였다. 그 뒤 공격 목표를 백암성으로 정하여 성의 서남부를 공격하자 성주 손대음(孫大音)이 항복하여 성을 내주었다. 그 뒤 당태종은 안시성전투에 패하여 귀국했지만, 백암성을 위시한 10여개 성과 요주(遼州)ㆍ개주(蓋州)ㆍ암주(巖州) 등의 3개 주가 당나라 영토에 편입되었다.
백암성은 당시 암주에 속하는 성이었고, 발해 때에는 노주(盧州)에 소속된 지역이었다. 백암성은 남만주평야의 하천유역에 있다는 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고구려 때에 돌궐족의 침입을 여러 번 받은 적이 있다.
백암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백’이 ‘밝다’ㆍ‘크다’는 의미를 가지므로 ‘큰 산’이 된다. 이는 평야지역의 구릉을 배경으로 발달된 지명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