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백제기(百濟伎)’ 라고 한다.
수나라 개황연간(開皇年間, 589∼600)초에 설치되었던 칠부악(七部樂) 중에는 들지 못하였으나, 신라기(新羅伎)·부남기(扶南伎)·강국기(康國伎)·돌궐기(突厥伎)·왜기(倭伎)와 함께 잡기(雜伎)의 하나로 수나라 궁중에서 연주되었다.
수나라 멸망 뒤, 당나라 중종 때 백제악공들이 죽자 폐지되었다가 개원연간(開元年間, 713∼741)에 복원되었다. 복원 당시에 쓰인 악기들은 쟁(箏)·적(笛)·도피필률(桃皮觱篥)·공후(箜篌) 등 네 가지였다.
그 당시 백제의 무용수들도 백제악에 포함되었는데, 이들은 큰 소매가 달린 저고리와 치마를 입었고, 장포관(章甫冠)을 썼으며 가죽신을 신었다고『구당서』와『신당서』에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