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오부제(五部制)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고대국가 성립 이전에 있었던 부족적 성격이 강한 오부제이고, 둘째는 고대국가 성립 후 수도를 다섯 구역으로 편제한 수도 오부제이며, 셋째는 지방행정조직으로서의 오부제이다.
첫번째의 오부제는 백제를 건국한 주체세력과 이 세력과 연맹관계를 맺었던 사방의 우세부족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서 중앙의 부족은 중부(中部)가 되고, 나머지는 방위명(方位名)을 따서 동부(東部)·서부(西部)·남부(南部)·북부(北部)가 되었다. 각 단위를 구성하고 이는 세력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정치형태였고, 이들을 편제하는 과정에서 5부제가 출현하였다.
중부의 중심세력은 왕족인 부여씨(扶餘氏) 집단이었고, 북부에는 진씨(眞氏)·해씨(解氏) 집단이 있었으며, 동부에는 흘씨(屹氏)·곤씨(昆氏) 등의 집단이 있었다. 이들은 병력을 동원해 말갈(靺鞨) 등 외부세력과의 전투를 수행하며 우보(右輔)나 좌보(左輔) 등의 직책을 수여받았다. 독자적 세력기반을 지닌 토착세력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관직수여를 통해 공적인 지배질서체제 내로 흡수하여 지방에 대한 국가지배력의 침투를 도모한 것이다. 이것은 뒤에 지방통치조직인 오방제(五方制)의 바탕이 되었다.
두번째의 ‘수도 오부제’의 연원은 한성(漢城)시대부터이며, 웅진(熊津)시대에 이미 부명(部名)이 보이고 있지만 본격화된 것은 사비로 천도한 이후였다.
편제방법은 수도를 상부(上部)·전부(前部)·중부(中部)·하부(下部)·후부(後部)의 오부로 나누고, 각 부를 다시 오항(五巷)으로 나누어 사서(士庶)로 하여금 거주하게 하였다. 부의 책임은 달솔(達率: 백제 16관등 중의 제2관등)의 위계에 있었던 자가 맡았으며, 휘하에 5백명의 군사가 예속되어 있었다. 달솔은 각 관서의 장을 맡고 있는 실질적으로 국가의 경영을 담당한 계층인데, 이들은 왕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는 관료계층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달솔의 휘하에 놓여 있는 군사는 명목상으로는 도성 내부의 치안 등을 담당하였을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귀족 세력을 견제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담당하였을 것이다.
또, ‘수도 오부제’는 여러 귀족을 수도에 정주(定住)하게 하고 부명(部名)을 관등명(官等名)에 관(冠)하게 하여 대소귀족의 주거처로 표시하게 함으로써 귀족에 대한 지역적 통제를 보다 용이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였다. 따라서 『일본서기』에는 귀족의 인명을 부명-관등명-인명의 순으로 표기하고 있다.
세번째의 지방행정조직으로서의 오부제는 전국을 다섯 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누고, 그 밑에 군(郡)과 성(城)을 예속시킨 제도이다. 명칭은 동부·서부·남부·북부·중부이며, 부 밑에는 37군 200성이 소속되어 있었다. 37군 200성은 백제 사비시기(泗沘時期) 말엽의 수치이므로 관산성전투(管山城戰鬪) 이전 백제 중흥기에는 더 많은 군·성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오부제는 사비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오방제를 재정비한 것으로 구체적인 개편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대개 의자왕대(義慈王代) 말경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오방제와 성격이 다른 것이 아니라 오방을 오부로 명칭을 바꾼 데 지나지 않는다.
뒤에 백제가 망하고 당나라가 백제의 고지(故地)에 오도독부(五都督府)를 둘 때 이 오부 조직을 그대로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