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여순(汝順). 아버지는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 백천민(白天民)이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호탕하고 지략이 많았으며, 행동이 용맹스러웠기 때문에 의를 위하여서는 죽음을 사양하지 않을 정도이었으며, 또한 악을 보면 반드시 물리치려는 협기가 있어 강인하고 용감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21세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천(泗川)에서 적을 피하여 노모와 함께 산중으로 들어갔다가 적에게 포로가 되었다. 적은 백홍제의 용맹을 가상히 여겨 죽이지 않고 적선(敵船)으로 끌고갔다. 그 뒤 계속 탈출을 시도하던 중 적의 칼을 빼앗아 배 안의 왜적을 죽이고 남녀 포로 70여 명과 함께 탈출하였다. 이 공으로 군자감봉사(軍資監奉事)가 되었다. 또한, 사천 땅에는 음사(淫祠: 미신을 믿는 사당)를 받드는 풍속이 있어, 신을 불경하는 자는 입과 코에서 출혈하여 죽는다는 소문이 나돌아 그 지방 수령도 어쩌지 못하였는데, 백홍제는 노하여 “요망한 것이 어찌 사람의 생사화복(生死禍福: 삶과 죽음 및 화와 복)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말이냐.”하고 그 신상(神像)을 불살라버리고, 사당도 헐어버렸다. 허목이 쓴 백홍제의 『의열전(義烈傳)』에 행적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