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 위주로 민간에서 행해지던 ‘산악(散樂)’의 총칭.
종묘의 제사나 조정의 의례(儀禮)에 쓰이는 고아(高雅)한 정통음악인 ‘아악(雅樂)’에 대립되어 쓰인다.
≪삼국사기≫ 유리이사금 가배조(儒理尼師今嘉俳條)에 “7월 보름부터 길쌈내기를 하여 8월 한가위에 그 승부를 가리고 진 편이 주식(酒食)을 갖추어 이긴 편을 대접하는데, 이 때에 가무백희를 놀고 이를 가배(嘉俳)라 하였다.”라는 기록에서 처음으로 가무백희라는 말이 나온다.
또한 551년(진흥왕 12) 처음 설치했다는 팔관회의 기사에도 “백희가무를 놀고 복(福)을 빌었다.”고 되어 있다. 이 때의 가무백희가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자세하지 않으나, ≪수서 隋書≫ 음악지(音樂志)에 보이는 각저희(角抵戱), 즉 산악과 그 정경이 비슷한 것으로 보아 중국의 산악백희(散樂百戱)에서 다분히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이 가무백희는 고려에 와서도 태조 왕건(王建)의 팔관회 계승으로 국가적 연중행사에 끼어 계승되었다. 국선(國仙)에 의한 가무백희로 천지신명을 기쁘게 하여 국가와 왕실의 태평을 기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려 의종 때에는 이미 신라 이래의 국선 대신 세속인(世俗人)으로 대행시켜 종교적인 제례(祭禮)에서 세속인의 백희로 바뀌었다. 이들은 일찍부터 채붕(綵棚:오색비단 장막을 늘인 다락으로, 나무로 (段)을 엮어 만든 일종의 장식무대)을 시설하고 공연하였다.
가무백희의 내용은 이색(李穡)의 시 <구나행 驅儺行>과 <산대잡극 山臺雜劇>, 성현(成俔)의 <관나시 觀儺詩>, 송만재(宋晩載)의 <관우회 觀優戱>, 명나라 사신 동월(董越)의 <조선부 朝鮮賦> 등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또 현재 전하는 탈춤과 남사당의 죽방울돌리기 · 대접돌리기(버나) · 장대타기 · 땅재주(살판) · 줄타기(어름) · 탈놀이(덧뵈기) · 꼭두각시놀음(덜미) 등과 같은 종목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