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삼한시대에 마한의 가장 큰 부족국인 벽비리국(辟卑離國)이었는데, 백제 때 벽골군(壁骨郡, 또는 辟骨郡) 또는 벽성군(辟城郡)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통일신라 때에 김제군(金堤郡)으로 고쳤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만경(萬頃)과 금구(金溝) 두 현을 합쳐 김제군의 영역을 확정하였다.
벽성의 지명 유래는 4세기 중엽 백제 비류왕 때 완성했다는 벽골지(壁骨池)와 관련이 있다. ‘벽(辟)’은 ‘벼〔禾〕’를 뜻하고 ‘성(城)’은 ‘골(骨: 고을)’과 통하므로 ‘벼의 고장’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곳은 호남평야의 중심부를 차지하기 때문에 일찍부터 벼농사가 발달하였다. 김제를 벽성과 관련시킬 때 가을의 황금들판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으나, 김제가 광복 전까지 남한 제일의 사금(砂金) 채취지역이었던 점으로 보아 ‘금이 나는 곳’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동진강(東津江) 유역을 차지하였던 이 지역은 강 하구에 해창(海倉)이 있어 이곳 물산을 모아 경강(京江)으로 보냈다. 조선시대에는 내재역(內才驛)이 있었고, 전주를 위시하여 호남의 여러 지역과 연결되는 도로가 발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