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황주(黃州). 자는 사겸(士謙). 변광재(邊光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변일(卞佾)이고, 아버지는 공조판서 변치명(邊致明)이며, 어머니는 이명의(李命義)의 딸이다.
1754년(영조 30)에 진사가 되고, 1756년 정시 문과(庭試文科)에 병과로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1760년에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이 되었다. 이듬해 호서지방의 시관(試官)으로서 공정하지 못하였다는 유생들의 항의로 1762년에 삭직당하였다.
곧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으로 복직되었으나 왕의 부름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파직당하였다. 1765년 삼례찰방(三禮察訪)에 기용되어 사간원의 헌납(獻納)·사간 등을 역임하고, 이듬해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가 되었다.
1769년에 승지에 오르고 1774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된 뒤 지돈녕부사·부사직(副司直) 등을 거쳐, 1793년(정조 17) 공조판서가 되었으며, 그 뒤 판돈녕부사·판의금부사·상호군(上護軍)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효정(孝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