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식(安俊植)과 박세영(朴世永) 주간으로 1926년 6월부터 1935년 2월까지 통권 80호가 발행되었다. 이 잡지는 1925년을 전후해서 밀어닥친 프로문학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적 계급의식 밑에서 출발하였다. 안준식이 제6호의 기념사에서 천명하였듯이 “가난한 동무를 위하야 값싼 잡지로 나오자.”는 슬로건은 이 잡지의 성격을 단적으로 말하여준 것이었다.
이 잡지를 통하여 활동한 작가로는 직접 편집에 관여한 안준식·박세영 외에 이기영(李箕永)·송영(宋影)·박아지(朴芽枝)·손풍산(孫楓山)·윤곤강(尹崑崗)·임화(林和)·엄흥섭(嚴興燮)·김해강(金海剛)·염근수(廉根守)·이동규(李東珪)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른바 프로문인들이 많았다.
따라서 여기 게재된 작품들은 계급주의적 목적성이 앞서서 당시의 『어린이』지나 『아이생활』지에 비하여 질적으로 처져 후세에 남을 만한 작품이 드물었다. 그러나 1920년대의 동심주의 전성시대에 있어서 아동을 천사로만 보지 않고 관념적이기는 하나 현실의식을 도입하였다는 점을 특색으로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