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67㎝, 가로 109.5㎝.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구봉영당(九峰影堂)에 소장되어 있다.
오사모(烏紗帽)에 녹포(綠袍) 단령(團領: 깃을 둥글게 만든 관복)의 관복을 입은 정식 초상화로서, 얼굴은 오른쪽을 향하고[左顔八分面] 의자에 앉은 전신상이다. 화폭은 비단을 이어 붙였으며 얼굴 표현이 들어가는 중간 부위는 넓은 폭을 사용하였다. 양 팔꿈치 부분에서 양 끝은 좁은 폭을 사용하여 결국 3폭이 이어져 있다. 이러한 연폭(聯幅) 형식은 조선시대 전기의 초상화 가운데 원본(原本)에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초상화 가운데 이 화상에서 흉배가 처음으로 나타난다. 흉배는 바탕천에 직접 금박 혹은 문양을 짠 수법이다. 후대의 자수 방식과 달리 명나라 제도를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흉배의 문양은 구름과 기러기[雲雁]로서 문관2품 때의 도상이다. 즉 1455년 좌익공신(佐翼功臣 : 세조가 즉위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내린 훈호) 때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화면의 오른편 여백에는 “조선 영의정, 고령부원군, 시호는 문충, 호는 보한재, 신숙주, 자는 범옹의 진영[朝鮮領議政高靈府院君諡文忠號保閑齋申叔舟字泛翁眞]”이라는 제기(題記)가 있다. 그리고 왼편에는 “성종조 을미년(1475) 공이 졸거한 후 70년이 지난 을사년(1545)에 개장했다[成廟乙未公卒後七十年乙巳改粧]”라고 적혀 있어, 1475년(성종 6년)에 개장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화법에 있어 안면은 음영 처리가 되어 있는데, 후에 보채(補彩)되었다. 그 표현 기법으로 미루어 보아 개장 이후에 다시 가채(加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살색은 선염이나 준찰(皴擦)로 이루어져 있다. 눈꺼풀 및 동공 처리의 묵선에도 섬세성이 강조되어 있다. 그리고 안면이 지닌 굴곡에는 자연스러운 선염 효과가 이루어져 착색(着色)의 묘를 살리고 있다.
의복의 윤곽선 및 옷주름 처리 역시 절묘하다. 의복의 윤곽은 각지게 나타난다. 그리고 옷주름 처리는 필요한 부분에만 강인한 선으로 간결하게 표현되었다. 그러나 보다 의미 있는 것은 녹의(綠衣)에는 진녹색 선으로, 빨간 내공(內工)에는 붉은 선으로, 남색에는 진남색 선으로, 보라색에는 진보라 선 등으로 이른바 동색계(同色系)의 짙은 색선으로 처리하여 색감에 대한 배려가 눈에 띤다. 족좌대(足座臺) 역시 남색에는 짙은 남색선을 두르고 고동색 나무에는 까만 선으로 테두리를 지워 윤곽선이 의식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필(筆)과 묵(墨)에서 모두 세련된 기법을 연출하였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안면과 옷주름에 구사된 선의 성격이 상이하다는 점이다. 얼굴은 부드러운 선으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옷주름은 빳빳한 선으로 처리되어 그 다양함을 보여 준다. 신숙주 영정은 전신(傳神)의 묘미·필법·설채의 완전함이 전화면에 미친 가작(佳作)으로서, 작품 자체로서도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