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중인 1596년 12월에 비변사의 건의로 왜병들에게 부모·형제를 잃은 유가족들을 중심으로 의병을 모집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전국에 방을 걸어 복수군을 모집하였는데, 서울에서는 군사 500여명과 군량미 400여석이 모집되어 회맹식(會盟式)을 거행하고 송순(宋諄)을 지휘관으로 임명하였다. 1598년에는 복수청(復讐廳)을 설치하고 김시헌(金時獻) 등을 보내어 전국적으로 군사와 군량미를 모집하였으나, 여의치 못하여 별로 성과를 올리지 못하였다.
그 뒤 소규모의 복수군은 곧 관군에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는 겸사복장(兼司僕將) 김택룡(金澤龍)이 의병을 모집하였는데 후금군의 침입이 예상되자 그는 1627년 정묘호란 때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모아 복수군을 결성하였다.
조정에서는 이들에게 직첩(職帖)을 주어 격려하였다. 또한 1666년(현종 7)에도 이후경(李後慶)의 건의로 병자호란 때의 피해가족을 복수군으로 편성하고 이들에게 군역을 면제해준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