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묘도감의궤』로 현재 전해지는 것은 다음의 2종이 있으며, 모두 규장각 도서에 있다.
첫째, 『단종정순왕후복위도감의궤(端宗定順王后復位都監儀軌)』는 1책의 필사본으로, 1698년(숙종 24) 9월부터 12월에 걸쳐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었던 단종과 부인(夫人)으로 강봉(降封)되었던 단종의 비(妃)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宋氏)를 복위시켜 부묘한 기록이다.
1698년 9월 30일 전행결성현감(前行結城縣監) 신규(申奎)가 노산군과 그 부인 송씨를 추숭하자는 상소문을 올림으로써 백관회의(百官會議)와 종친·문무백관 491명의 자필봉입(自筆封入)에 의한 수의(收議)를 거쳐 복위가 결정되었다.
이어 복위부묘도감과 봉릉도감(封陵都監)이 설치되었다. 또한 신주가 새로이 조성되어 명정전(明政殿)에 이봉(移奉), 정순왕후의 신주와 함께 종묘에 부묘되었다. 도제조(都提調)는 영의정 유상운(柳尙運), 제조는 민진장(閔鎭長) 등이다.
노산군의 복위추상시호(復位追上諡號)는 순정안장경순돈효대왕(純定安莊景順敦孝大王), 묘호(廟號)는 단종(端宗), 능호(陵號)는 장릉(莊陵), 부인의 시호는 정순왕후, 휘호(徽號)는 단량제경(端良齊敬), 능호는 사릉(思陵)으로 결정되었다. 채색 반차도(班次圖)가 있다.
둘째, 『단경왕후복위부묘도감의궤(端敬王后復位祔廟都監儀軌)』는 2책의 필사본으로, 1739년(영조 15) 3월부터 5월까지 중종의 폐비(廢妃) 신씨(愼氏)를 추복위시켜 종묘에 부묘한 기록이다.
1739년 3월 11일 유학(幼學) 김대남(金臺南)의 상소로 폐비 신씨의 복위·부묘가 발의되어 2품 이상의 대신회의와 재외대신(在外大臣)·유신(儒臣)들의 수의를 거쳐 사우(祠宇)에 있던 신주를 우선 위선당(爲善堂)에 이봉시켰다.
신주를 신조해 개제주(改題主)한 뒤 혼전(魂殿)인 자정전(資政殿)에 이봉했다가 다시 종묘에 부묘시켰다. 부묘도감의 도제조는 우의정 송인명(宋寅明), 제조에 신사철(申思喆) 등 5명이다. 시호는 단경, 휘호는 모소순열(慕昭順烈), 능호는 온릉(溫陵)이고, 권말에 채색의 반차도가 있다.
이상 의궤의 편차는 대개 숙종∼정조연간의 일반적 형식을 취해 좌목(座目)·계사(啓辭)·별단(別單)·이문(移文)·내관(來關)·품목(禀目)·감결(甘結)·예관(禮關)·서계(書啓)·논상(論賞)·일방(一房)·이방(二房)·삼방(三房)·별공작(別工作)·수리소(修理所) 등의 순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