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고구려의 술이홀현(述尒忽縣, 또는 述彌忽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봉성현으로 고쳐 교하군(交河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당시에 교하군은 한주(漢州)에 속해 있었다. 1018년(현종 9) 양주(楊州)에 예속시켰고, 1172년(명종 2) 감무를 설치하였으며 뒤에 서원(瑞原)으로 고쳤다.
1398년(태조 7) 서원과 파평(坡平)을 합쳐 원평군(原平郡)으로 바꾸었고, 1460년(세조 6) 파주도호부로 승격시켰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교하군을 합쳐 파주군이 되었다.
봉성의 지명유래는 술이홀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술이’가 ‘수리’라는 뜻으로 ‘꼭대기〔頂〕’의 의미를 가지고 ‘홀’은 ‘들’ 또는 ‘벌’이라는 뜻을 가지므로 ‘들판의 성’이라는 뜻과 같은 의미가 된다. 봉성은 ‘산봉우리에 둘러싸인 들’이라는 뜻이므로 넓은 분지인 지형과 관련이 있다.
봉성이 있던 당시 북쪽은 성산(城山), 남쪽은 우두산(牛頭山), 동쪽은 차유령(車踰嶺) 등으로 막혀 있었고, 서쪽은 임진강의 지류를 따라 문산포(文山浦)에 이르렀다. 부근에는 마산역(馬山驛)이 있어 개성과 이어지며, 대산(大山)에는 봉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