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려(金鑢)가 1810년(순조 10) 이후에 편찬한 『담정총서(藫庭叢書)』 권14에 수록되었다.
「추기남정시말(追記南程始末)」과 「소서(小敍)」에 의하면, 이 책은 저자가 문체(文體) 때문에 정조에게 견책을 받고 1799년(정조 23) 영남의 삼가(三嘉, 일명 鳳城) 지방으로 충군되어 갔다가 118일 만에 돌아올 때, 그간 보고들은 내용을 이듬해 5월 하순 화석정사(花石精舍)에서 쓴 것이다.
그러나 책의 제목은 김려가 저자의 글을 필사, 편집하는 과정에서 붙인 것이다. 사(詞)를 시여(詩餘)라 하듯이 비록 문(文)의 정체(正體)는 아닐지라도 문의 여(餘)는 되기 때문에 그렇게 명명하였다고 발문에서 밝혔다.
이 책은 총 64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역사·유적·토속·민속놀이·무속·야담·필기·방언·은어 등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이에는 전통문화에 대한 저자의 자존의식과 도덕관 등이 두루 드러나 있다.
한편 토속·민속놀이·무속에 관한 기록들은 당시 이 지방의 민속학연구에 새로운 자료가 될 수 있다. 또한 이 지방의 방언과 도적들의 은어는 얼마 되지 않는 내용이지만 희귀한 자료이다.
야담·필기류에서 관찰할 수 있는 그의 도덕관은 특이하다. 지배층의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비판적인 반면, 하층민에 대해서는 관심과 흥미를 나타내고 있다. 이같은 세태 묘사 작품의 생생한 문체는 패사소품(稗史小品)으로서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밖에도 이 책은 당시의 시대상을 다각도로 살필 수 있는 자료집으로서 활용 가치가 높다. 통문관(通文館)이겸로(李謙魯)가 소장하고 있는 국내 유일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