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백제의 두시이현(豆尸伊縣, 또는 富尸伊縣)이었는데, 당나라가 백제를 멸한 뒤 순달(淳達)로 고쳐 노산주(魯山州: 지금의 益山郡 咸悅邑)의 속현으로 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이성현(伊城縣)으로 고쳐 진례군(進禮郡: 지금의 錦山郡)에 예속시켰다가 고려 때인 940년(태조 23) 부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명종 때 한때 감무(監務)를 두었으나 뒤에 다시 금산에 속하게 하였다.
조선 말기까지 존속하였던 부동(富東)ㆍ부남(富南)ㆍ부서(富西)ㆍ부북(富北)의 4개 면은 옛 부리현의 지역이었다. 이곳은 지형적으로 금강(錦江)의 상류에 위치한 산간 내륙지역으로 부리의 옛 이름인 두시이는 ‘큰 산〔大山〕’이란 뜻을 갖는다.
산간의 외진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부근의 가정자원(柯亭子院)을 통해 금산과 무주(茂朱)에 연결되었다. 옛 지도를 보면 금산 동남쪽의 신천(新川)과 감동강(甘同江) 일대를 부리의 4개 면이 차지하고 있었다. 부근의 소이진(召爾津)은 하천을 통하여 외부와 연결하는 교통요지의 구실을 하였다. 지금의 부리면 지역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