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리 ()

목차
인문지리
지명
충청남도 금산 지역의 옛 지명.
이칭
이칭
두시이현(豆尸伊縣), 부시이현(富尸伊縣), 순달(淳達), 이성현(伊城縣)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충청남도 금산 지역의 옛 지명.
내용

본래 백제의 두시이현(豆尸伊縣, 또는 富尸伊縣)이었는데, 당나라가 백제를 멸한 뒤 순달(淳達)로 고쳐 노산주(魯山州: 지금의 益山郡 咸悅邑)의 속현으로 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 이성현(伊城縣)으로 고쳐 진례군(進禮郡: 지금의 錦山郡)에 예속시켰다가 고려 때인 940년(태조 23) 부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명종 때 한때 감무(監務)를 두었으나 뒤에 다시 금산에 속하게 하였다.

조선 말기까지 존속하였던 부동(富東)ㆍ부남(富南)ㆍ부서(富西)ㆍ부북(富北)의 4개 면은 옛 부리현의 지역이었다. 이곳은 지형적으로 금강(錦江)의 상류에 위치한 산간 내륙지역으로 부리의 옛 이름인 두시이는 ‘큰 산〔大山〕’이란 뜻을 갖는다.

산간의 외진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부근의 가정자원(柯亭子院)을 통해 금산과 무주(茂朱)에 연결되었다. 옛 지도를 보면 금산 동남쪽의 신천(新川)과 감동강(甘同江) 일대를 부리의 4개 면이 차지하고 있었다. 부근의 소이진(召爾津)은 하천을 통하여 외부와 연결하는 교통요지의 구실을 하였다. 지금의 부리면 지역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대동지지(大東地志)』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