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구암리 지석묘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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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구암리 지석묘군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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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문화재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하서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남방식(바둑판식) 고인돌군. 지석묘군.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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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하서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남방식(바둑판식) 고인돌군. 지석묘군. 사적.
개설

1956년 이홍직(李弘稙)에 의해 맨 처음 조사되었다. 1963년 1월 21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은 3,322㎡이다. 원래는 백영기(白永基)씨 댁의 울타리 안에 13기(基)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중 10기만이 확인되었다.

내용

전체 10기의 고인돌 중 건물 동남쪽에 위치한 A호는 장축(長軸)이 정남북방향이고 덮개돌[上石]의 길이 6.4m, 너비 4.5m, 두께 0.8m로 상당히 큰 편이며 8개의 고임돌[支石]이 받쳐져 있는 다지석식(多支石式)이다. 고임돌은 대략 높이 0.7∼1.0m, 너비 0.3∼0.76m의 자연석괴로서 자라등처럼 타원형인 뚜껑돌의 주변 밑을 따라 둘러싸여 있다. 이것은 바둑판식 고인돌이 시대가 내려오면서 덮개돌 아래에 몇 개의 주상(柱狀) 또는 판상(板狀)고임돌을 외연을 따라 세운 것으로 그 자체가 무덤방[石室]의 역할을 하고 있다. 1969년 당시까지 발견된 바둑판식 고인돌로는 최대 규모였다.

B호는 A호의 북쪽 담장을 따라 남북(서남 20°방향)으로 놓여 있다. 덮개돌은 길이 6.38m, 너비 3.84m, 두께 0.65m의 비교적 얇은 장방형을 이루고 있으며, 높이 0.6m 정도의 4개의 고임돌을 괴고 있다.

C호는 B호와는 반대쪽인 건물 서편에 있으며 장축 서남 32° 방향으로 역시 4지석식이다. 덮개돌은 길이 4.6m, 너비 2.24m, 두께 1.30m로서 길이에 비해 두께가 두껍다. D호는 B호의 서남방에 있는 소형의 고인돌이다. 장축은 동서방향으로서 덮개돌은 길이 2.6m, 너비 1.77m, 두께 0.52m의 4지석식이다.

E호는 B호와 나란히 그 남방에 자리한다. F호는 E호의 남쪽에 있다. 장축 동남 70°방향, 길이 4.5m, 너비 2.76m, 두께 0.6m의 자라등모양의 덮개돌을 4개의 고임돌로 받쳤다.

G호는 F호의 동쪽에 있다. 장축 동남 20°방향, 길이 3.12m, 너비 2.34m, 두께 0.62m의 자라등형 덮개돌을 역시 4개의 고임돌이 받치고 있다.

H호는 G호 남쪽에 이웃해 있다. 장축 동남 30°방향, 덮개돌은 길이 3.0m, 너비 2.47m, 두께 0.84m의 4지석식이다. I호는 G호와 나란히 그 서편에 있다. 장축 동남 30°방향, 덮개돌은 길이 1.84m, 너비 1.25m, 두께 0.5m의 소형 덮개돌을 4개의 고임돌로 괴었다.

J호는 F호의 동편 담장 밑에 깔려 일부분만 노출되었다. 동서 장축방향으로 길이 1.20m, 두께 0.38m이고 너비는 알 수 없다.

특징

구암리에는 여러 곳에 지석묘군이 있는데 이들은 대체로 자연 암석을 떼어내어 덮개돌로 사용하였고 그 아래 고임돌을 몇 개씩 괴어 놓았다. 고임돌이 4개인 것과 8개인 것 등 두가지가 있고 키가 큰 돌을 고임돌로 세워놓은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남쪽지방에는 뚜껑돌 밑에 작은 돌을 괴어놓은 남방식 고인돌이 많은데 부안과 고창 일대에는 키가 큰 북방식[卓子式] 고인돌이 군데군데 분포하고 있다. 구암리 고인돌 가운데 특히 덮개돌이 가장 큰 것은 길이 6.35m, 너비 4.5m가 되며 거북모양으로 생겼고, 고임돌 8개를 둥글게 돌려 세워놓은 것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고임돌은 70∼100cm 높이에 이른다. 그 밖의 다른 것들은 고임돌 4개를 세워놓은 것들이고 뚜껑돌의 크기는 길이 3∼4m, 너비 2∼3m 정도가 된다. 구암리 고인돌은 다른 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참고문헌

「부안지석묘」(최몽룡, 『한국 지석묘(고인돌) 유적 종합조사·연구(Ⅱ)』, 문화재청·서울대학교박물관, 1999)
『문화재대관』(문화관광부 문화재관리국, 1998)
『부안군지』(부안군, 1991)
『전라북도지』(전라남도, 1989)
「임자도의 선사유적」(최몽룡, 『고문화』20: 전남 서남해안일대의 고고학적 연구, 1982)
「각지의 고분 및 지석묘 조사」(전영래, 『전라북도지』상, 전라남도, 1969)
『독사여적(讀史餘滴)』(이홍직, 일조각,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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