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소산리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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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주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토기조각 · 석촉 · 석도 등이 출토된 생활유적. 산성 · 성곽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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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주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토기조각 · 석촉 · 석도 등이 출토된 생활유적. 산성 · 성곽터.
내용

1966년 전주시립박물관에서 조사하였다. 부안읍 남쪽 10㎞ 지점의 높이 약 140m의 산 위에 있는 위곽 유적(圍郭遺蹟)이다.

유적의 성은 전형적인 백제시대의 산성(山城)으로 주산(舟山: 배메산 231m)줄기의 동쪽 끝인 소산(所山, 146m)의 정상을 테뫼식으로 두른 토성(土城)이다. 사산(蓑山)으로부터는 동남으로 약 2.5km 떨어져 있고, 동으로는 고부천을 사이에 두고 두승산과 마주보고 있다.

성지(城址)는 장축이 대략 동남방향으로 타원형 테뫼식 토단을 쌓고 있는데, 둘레 325m, 면적 42㎡의 소규모이다. 동쪽은 경사가 급하지만 서사면은 대지(臺地)를 이루어 이 대지 상에 석기 · 민무늬토기편 등이 산포되고, 남사면과 성 밖에는 초기철기시대에서 삼국시대에 걸친 토기편이 발견된다.

채집된 석기는 마제석촉 3점, 마제석검편 1점, 삼각형석도편 4점, 유구석부(有溝石斧) 1점 등이다. 토기편은 표면에 고운 점토를 덧바르고 민무늬토기 표면을 조개껍질이나 빗모양의 표면조정구를 위아래로 문지른 자국이 있는 토기와 표면을 문지른 붉은간토기〔紅陶〕 · 검은간토기〔黑陶〕조각 등이 있다.

기형(器形)으로는 아가리가 약간 밖으로 누운 깊은 바리〔深鉢形), 사발형(湄形), 목달린 단지형〔有頸壺形〕의 3종이 있다.

석촉은 회색 또는 검은색 혈암(頁岩)으로 만들었고, 모두 버들잎형으로서 단면 납작마름모꼴로 등대를 세웠다. 촉뿌리는 부러져 없어졌으나 2점은 촉신(鏃身)이 짧은 납작뿌리이고 1점은 촉신이 가늘고 긴 뾰족 뿌리로 보인다.

석검편은 검신은 등대를 세우고, 자루부분은 납작해 단면 장방형을 이룬다. 이는 송국리 주거지 출토의 소형 석검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자루부분이 납작한 것은 나무자루에 끼우고 끈으로 붙들어매는 석창(石槍)의 기능을 가진 것이다.

석도는 영암 월송리, 부여 송국리 등 서해안지방 특유의 삼각형교인석도(三角形交刃石刀)로서 위 유적과 함께 가장 많은 양이 나왔다. 모두 삼각형의 단변에 앞뒤가 다르게 갈아 날을 세우고 장변 가까운 중앙에 2개의 구멍을 뚫었다.

홈자귀는 다른 예와는 달리, 사다리꼴의 넓은 쪽에 날을 세우고 어깨부분 한쪽에 홈을 파서 자루에 고착시킬 수 있게 하였다.

민무늬토기 밑바닥에는 ‘볍씨자국’이 찍힌 것이 1점 섞여 있었다. 이것은 한반도 최초의 볍씨자국토기의 발견 예이다. 이 볍씨자국은 길이 6.5㎜, 너비 3.8㎜로서 장폭지수(長輻指數)는 1.71이 된다. 그동안 일본에서는 많은 볍씨자국토기가 발견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1920년대 김해 조개무지에서 발견된 기원전 1세기경으로 추정되는 탄화미가 전부였다. 이처럼 고대미(古代米) 자료가 불충분하자 일본학자들은 벼농사의 일본→한반도 전래설을 공공연히 주장하며 그들의 우월성을 과시하기도 했었다.

일본 북구주(北九州) 이타쓰케 유적(板付遺蹟)에서 발견된 볍씨 19개의 장폭지수 평균이 1.82라는 사실과 대비해 볼 때, 소산리의 볍씨들이 일본형(O.S.Japonica)에 속함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유적은 볍씨자국의 발견 및 삼각형석도의 집중발견 등으로 미루어 서남해안 지방의 중요한 벼농사 유적의 하나로 보인다. 같은 유형의 석도가 나온 영암 월송리나, 부여 송국리유적에 비춰볼 때, 서기전 3∼2세기경의 고지취락으로 보인다. 또한 삼국시대 초에 성책을 개축한 것을 토기와 기와편의 존재로 알 수 있다.

참고문헌

「부안지방 고대위곽유적(扶安地方 古代圍郭遺蹟)과 그 유물(遺物)」(전영래, 『전북유적조사보고(全北遺蹟調査報告)』4, 1975)
「韓國扶安郡における?痕する無文土器の發見意義」(全榮來, 渡邊吉鎔 譯, 『考古學ジャナル』114,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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