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57.9㎝, 가로 674.1㎝. 함경도의 길주목(吉州牧)과 함흥부(咸興府)에서 실시된 문무과(文武科) 과거 시험 장면을 기록한 공식적인 행사도이다. 이 그림은 두루마리의 형식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머리에는 ‘북새선은(北塞宣恩 : 변경지역에 베푼 임금의 은혜)’이라는 예서체의 제명이 적혀 있다. 그리고 「길주목도회시(吉州牧都會試)」, 「함흥부문무과방방도(咸興府文武科放榜圖)」가 그려져 있다. 끝에는 시관(試官) 명단, 시험 일자, 제목, 합격자 명단, 합격자 출신군별 통계 등을 적은 기록이 적혀 있다.
함경도는 전통적인 소외지역이었으나 17세기 중반 청과 대립하는 상황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중앙에서는 이 지역의 인재를 등용함으로써 변방 지역 사람들을 위무(慰撫)하고 그곳의 실정을 파악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1664년 과거시험을 시행하였다. 함경도 문무과 별시의 시험관은 당시 관찰사였던 민정중(閔鼎重)과 중앙에서 서인 세력의 핵심 인물인 김수항(金壽恒) 등이었다. 이들은 함경도의 명승지인 칠보산(七寶山) 등을 유람하고 『북관수창록(北關酬唱錄)』이라는 시화첩을 제작하였다. 시험관들은 「북새선은도」 제작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길주목도회시」는 관아의 마당에 문과와 무과의 시험을 보는 장면을 주제로 삼았다. 시험을 치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실적이면서도 해학적으로 묘사되어 조선후기 풍속화와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 「문무과방방도」는 과거를 치른 뒤 시상하는 장면을 담았다.
행사 장면을 비롯하여 성 주변의 경치를 조감법으로 넓게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 안에는 행사 장소만을 주변의 건물에 비하여 확대하여 그려 넣어 각 성의 전경과 행사 장면을 무리 없이 엮어 넣었다. 관아 건물은 평행 투시 도법을 사용하였지만, 다른 건물은 시점이 일정치 않고 복잡하다.
두 그림 모두 화면 상단에는 연이은 산맥이 길게 늘어서 있다. 녹색과 황색을 선염(渲染 : 색칠할 때 한쪽을 진하게 하고 다른 쪽으로 갈수록 엷고 흐리게 하는 일)으로 연결시킨 청록 산수 기법을 사용하였다. 구불구불한 윤곽선에 짧은 준을 치고 능선을 따라 점 모양의 태점을 많이 찍었다. 이러한 산악 표현은 17세기 도화서의 대표적 화가 이징(李澄)의 화풍과 상통하는 것을 당시 도화서의 화풍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길주목도회시」에서는 수직으로 솟은 암산의 표현이 보이는데, 이는 실제 길주의 북쪽에 위치한 도산(刀山)을 묘사한 것으로 보이며 당시 금강산의 표현도 이러했을 것으로 보인다. 채색은 산을 비롯하여 건물, 인물, 나무 등에 한정하여 장식적으로 표현하였다.
구름의 표현을 보면, 「함흥부문무과방방도」에서는 선으로 구름을 표시한 구운법(鉤雲法)을 사용한 반면, 「길주목도회시」에서는 여백으로 구름을 표시한 염운법(染雲法)을 사용하여 대조적이다. 인물의 경우는 간신히 이목구비만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간략하게 묘사하고 옷에는 채색을 입혔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후대에 모사된 『북새선은도』가 소장되었다.
17세기 중엽 함경도 지역에 대한 영토 의식 및 궁중 기록화와 실경 산수화의 화풍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