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언율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그 사연과 시가 전하고 있으며, 중국의 『전당시(全唐詩)』에도 이 작품을 왕거인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분원시」의 창작배경은 다음과 같다. 진성여왕의 난정(亂政)으로 나라가 어지럽게 되어서 어떤 사람이 시정(時政)을 비방하는 방(榜)을 길거리에 붙였다. 여왕은 왕거인이 방을 붙였다고 의심하여 왕거인을 옥에 가두었다.
왕거인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자 그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시를 지어 감옥의 벽에 써 붙이고 하늘에 호소하였다. 그날 저녁에 하늘이 진동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여왕은 왕거인이 죄가 없음을 알고 왕거인을 놓아주었다.
「분원시」의 내용은 작자가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말없는 푸른 하늘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은 다소 차이가 있으며 시의 내용도 조금씩 다르다.
『삼국사기』의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우공이 통곡하니 삼년동안 가물었고, 추연이 슬퍼하자 오월에 서리 내렸네. 지금 나의 깊은 시름 도리어 옛 일 같은데, 하늘은 말없이 푸르기만 하네(于公慟哭三年早 鄒衍含悲五月霜 今我幽愁還似古 皇天無語但蒼蒼).”
『삼국유사』의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연나라 태자 단이 우니 무지개가 해를 꿰었고, 추연이 슬퍼하자 여름에 서리가 내렸네. 지금 내가 길을 잃음이 오히려 옛일과 같은데, 하늘은 무슨 일로 상서로운 일을 내리지 않나(燕丹泣血虹穿日 鄒衍含悲夏落霜 今我失途還似舊 皇天何事不垂祥).”
『삼국사기』에서는 우공과 추연의 고사를 1구와 2구에 각각 수용하였다. 『삼국유사』의 것은 1구에 연나라 태자 단의 고사가 원용되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은 대체로 같으나 구체적인 표현은 서로 다르다. 작자표기에 있어서도 『삼국사기』와 『전당시』에는 ‘王巨仁(왕거인)’으로 되어 있으나 『삼국유사』에는 ‘王居仁(왕거인)’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 칠언시의 효시를 원효(元曉)의 “태어나지 마라 죽기 괴롭다. 죽지 마라 태어나기 괴롭다(莫生兮其死也苦 莫死兮其生也苦).”라는 시나, 수로부인(水路夫人)의 「해가(海歌)」에서 찾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근체시의 율격에 근접하고 있는 칠언시는 이 작품이 가장 오래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