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백제의 파지성(波知城, 또는 分沙ㆍ夫沙)이었는데, 당나라가 백제를 멸한 뒤 이곳에 분차주(分嵯州)를 설치하였다. 분차주에는 4개의 속현을 두었는데 귀단(貴旦: 본래 仇斯珍兮)ㆍ수원(首原: 본래 買省坪)ㆍ고서(皐西: 본래 秋子兮)ㆍ군지(軍支) 등이다. 이 가운데 군지현은 뒤에 군지부곡(軍知部曲)으로 바뀌었다.
신라의 영토가 된 뒤 757년(경덕왕 16) 무주(武州)의 분령군(分嶺郡)으로 바뀌었으며, 분령군의 속현으로는 조양(兆陽)ㆍ충렬(忠烈)ㆍ백주(柏舟)ㆍ동원(董原)의 4개 현이 있었는데, 분차주의 속현과 어떤 관계인지는 알 수 없다.
분차의 지명유래는 부사(夫沙)와 같은 의미를 가지는데, 이는 ‘모래벌’이라는 뜻으로 해안지방의 지형적 특색에서 나온 듯하다. 조선시대까지 낙안(樂安) 부근에 분사치(分沙峙)라는 지명이 있었고, 동점(銅店)이라는 지명이 있어 구리가 생산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