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사성 ()

목차
관련 정보
랴오닝 비사성 전경
랴오닝 비사성 전경
인문지리
유적
중국 요령성 요하(遼河)유역에 있었던 삼국시대 수양제와 당태종의 고구려 침입과 관련된 성곽.
이칭
이칭
비사성(卑奢城), 사거성(沙車城)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중국 요령성 요하(遼河)유역에 있었던 삼국시대 수양제와 당태종의 고구려 침입과 관련된 성곽.
내용

수양제와 당태종의 고구려침입과 관계가 있는 성이다. 614년(영양왕 25) 수나라의 내호아(來護兒)가 요동만(遼東灣)에 상륙하여 비사성(또는 卑奢城ㆍ沙車城)에 이르자 아군이 맞아 싸웠으나 이를 이기지 못하였다. 당시에는 고구려와 수나라가 모두 전쟁에 지쳐 있던 시기였으므로 영양왕의 타협안을 받고 수양제는 뒤에 귀국하였다.

그 뒤 645년(보장왕 4) 당나라 대군이 수군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와 비사성을 엄습하였다. 비사성은 삼면이 절벽으로 되어 있고 서문(西門)으로만 오를 수 있었는데, 치열한 전투 끝에 성이 함락되어 8,000여명의 주민이 생포되었다.

발해 때는 남경남해부(南京南海府) 요해주(遼海州) 남해군절도(南海軍節度) 관할이었고, 중국의 영토가 된 후에는 봉천부(奉天府) 해성현(海城縣)에 속하였으며, 금나라 때는 징주(澄州)라 하였다.

비사성은 중국에서 평양에 갈 때 꼭 들러야 하는 교통상의 요로(要路)에 있어 역사적으로 많은 침략을 받은 곳이다. 비사성의 지명 유래는 ‘장성(長城)’이라는 뜻에서 나왔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대동지지(大東地志)』
『한국고대국명지명연구(韓國古代國名地名硏究)』(이병선, 형설출판사, 1982)
관련 미디어 (3)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