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은 2인(뒤에 1인으로 감소)이다. 상위의 사인(舍人, 정4품) 및 검상(檢詳, 정5품)과 함께 실무를 담당하였다.
1392년(태조 1) 7월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의 부속기관으로 검상조례사(檢詳條例司)가 새로이 설치되고 그 속관으로 검상과 함께 3관(三館)이 겸하는 녹사(錄事) 3인이 설치되면서 원형이 성립되었다.
1400년(정종 2) 4월 도평의사사가 의정부로 개편되면서 녹관(祿官)이 되고, 1414년(태종 14) 4월 6조직계제(六曹直啓制) 실시로 인한 의정부 기능의 축소와 함께 검상조례사가 혁파되면서 예조로 이속(移屬)되었다.
1436년(세종 18) 4월 의정부서사제(議政府署事制)의 부활에 따른 의정부 기능의 강화로 인한 검상조례사의 부활과 함께 예조에서 의정부로 환속(還屬)되었고, 1466년(세조 12) 1월『경국대전』의 편찬과 함께 사록으로 개칭되면서 확립, 이후 『대전통편(大典通編)』에 이르러 1인으로 감소, 이것이 근대식 관제로 개편되는 갑오경장 때까지 계속되었다.
의정부 기능의 중시와 함께 성균관과 교서관(校書館)의 박사(博士) 이하 직을 당연직으로 겸임하였고, 문신으로서 친가(親家)와 외가(外家)의 4대조(四代祖)와 본인에 허물이 없고 장리(贓吏)의 자손이 아니어야 하며, 상피(相避)의 규정이 적용되는 등 엄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