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그의 문집에는 보이지 않고, 『동문선(東文選)』 제1권의 사조(辭條)에 실려 있다. 미인(美人)은 군주(君主)·군자(君子)·현인(賢人)·애인 등을 통칭하는데, 넓은 의미로는 ‘그리운 사람’이라는 뜻으로 우리말의 ‘임’에 해당한다. 이 글은 정몽주가 절동(浙東)의 협사안(陜士安)에게 부친 것이다.
서두에서는 옥 같은 임과 창해(滄海)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으면서 그에 대한 사모의 정한을 묘사하고 있다. 이어서 승냥이와 이리 같은 악인들이 요로(要路)에 있고, 용이 들에서 싸우듯이 군웅(群雄)이 서로 다툰다고 당시 중국의 혼탁한 정치적 상황을 비유하였다.
그러나 자신은 고려에 있기 때문에 가서 함께 할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을 읊고, 아울러 큰 띠를 띠고, 홀(笏)과 화잠(華簪)을 꽂은 모습을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심정과 이를 실현할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렸다.
우리의 사문학(辭文學)은 고려 말기에 상당히 나타나지만, 정몽주의 이 작품은 우리나라 최초의 미인사라는 데에 의의가 더욱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