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한성도서(漢城圖書)에서 간행한 작자의 첫 시집 『산호림(珊瑚林)』에 수록되어 있다. 네 번째 시집이자 노천명 사후에 간행된 유고 시집 『사슴의 노래』(1958)에 실려 있는 표제작과는 관련이 없다.
모두 2연 8행으로 짜여진 이 시는 정제된 형태미와 섬세한 시어 구사가 두드러지는 시라고 할 수 있다. 균형 잡힌 형태와 다듬어진 시어는 내성적인 이 시의 분위기와 잘 어울려서 조화미와 안정감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사슴’은 시인의 감정이 투영(投影)된 하나의 객관적 상관물에 해당한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관(冠)이 향기로운 너는/무척 높은 족속이었나보다.”라고 하는 일 연에는 사슴에 대한 외양 묘사와 함께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심리 상태가 감정이입이 되어 있다.
사슴의 외양적 특성은 ‘모가지’와 ‘관’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목은 유난히 긴 것으로 묘사되는 데 비하여 관은 향기로운 모습으로 제시된다. 이 ‘긴 모가지’와 ‘향기로운 관’ 사이에서 사슴의 운명적인 모순성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 두 상반되는 구절 사이에 드러나는 모순 또는 이율배반은 바로 사슴의 그것이면서 또한 노천명의 운명적인 모순성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따라서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잃었던 전설을 생각해내고는/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바라본다”라고 하는 이 연에서는 모순의 비극성이 더욱 심화되어 나타난다.
그것은 과거적 상상력에 몰입함으로써 현재와 미래적 전망을 상실하는 모습으로 제시된다.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바라본다”라고 하는 구절 속에는 현실적인 면에서 낙원(樂園)을 상실하고 과거 속에서 삶의 위안을 성취하려는 애달픈 안간힘이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