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은 2인이다. 하위의 검상(檢詳, 정5품)과 사록(司錄, 정8품)을 지휘하면서 실무를 총괄하였다. 그 밖에 중요 국사에 왕명을 받아 삼의정(三議政)의 의견을 수합하고 삼의정 또는 의정부당상의 뜻을 받들어 국왕에게 아뢰는 등 국왕과 의정부의 사이에서 중요한 임무를 담당하였다.
1400년(정종 2) 4월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를 의정부로 개편할 때 1390년(공양왕 2) 이래 도평의사사의 사무를 통할해온 도평의사사 경력사(經歷司)의 경력(經歷)과 도사(都事)를 의정부 경력사 경력과 도사로 계승하여 성립되었다.
1403년(태종 3) “지금의 내서사인(內書舍人)은 옛날의 문하사인(門下舍人)이다. 지금은 이미 문하부를 의정부로 개칭하고 사간원(司諫院)을 따로 설치했는데도, 사인은 계속 사간원관의 칭호를 계승하여 명실이 같지 않으니 시정해야 된다.”는 하륜(河崙)의 주장에 따라 경력사의 경력과 도사를 폐지하였다. 그리고 문하사인적인 성격을 지닌 사간원의 내서사인을 의정부에 이관하고 내서사인을 의정부사인으로 개칭, 확립된 이후, 근대식 관제로 개편되는 갑오경장 때까지 계속되었다.
의정부 기능 및 국왕과 의정부대신 간의 구실이 중시되어 재직 기간이 만료되면 승천(陞遷)되었다. 춘추관의 수찬관(修撰官) 이하 직을 당연직으로 겸임했고, 상피(相避 : 친족 또는 서로 긴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같은 곳에서 벼슬하는 것을 피하게 함) 규정에 적용되었다. 또, 결원이 생기면 검상이 으레 승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