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필사본. 책에 기록된 사창의 설치·운영에 관한 규정(절목)들은 1867년(고종 4) 호조에서 왕명에 따라 제정되었으며 그 내용은 이 절목의 제정경위를 밝힌 전문(前文)과 17개 조목 내용, 그리고 지금의 창고 시방서격인 토교지제(土窖之制)에 대한 설명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문의 요지는 “호조판서와 유사(有司) 그리고 구관당상(句管堂上)이 왕명을 받들어 시의(時宜)에 맞는 사창을 지어 천재지변에 대처하고, 조적(糶糴)의 폐단을 막기 위해 이 절목을 제정하고 전국에 이를 반포하니 한글로 번역해 마을과 시장에 게시하도록 하라. 또, 이 절목에 개정을 요하는 사항이 있으면 순영(巡營)과 본부에 보고할 것이며, 사창마다 사수(社首) 1인을 임명해 출납을 전담하도록 하고, 고지기[庫直]는 사수가 동민 중에서 차출하도록 하며, 양곡을 계량하는 두곡(斗穀)은 새로 유기(鍮器)로 만들어 영구히 폐단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다.
17개 조목 중 몇 가지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사창은 곡물을 저장하기 위한 흙으로 지은 곳집[倉庫]으로 각 면의 큰 동리 중 인가가 가장 밀집한 곳에 짓되, 이 창고를 담당할 사수는 면내에서 생계가 넉넉하고 성실한 자를 민의를 참작해 임명해야 한다.”
“가을에 곡식을 사창에 거두어들일 때는 각 마을이 대소와 빈부를 참작하되 결코 반상(班常)을 가리지 말고 공평을 기할 것이며, 마을사람 가운데 유망(流亡)해 봄에 가져간 곡식을 갚을 길이 없을 때는 마을에서 공평하게 균등 분담하도록 한다.”
“환곡(還穀)의 배분에 있어서는 민정의 완급에 따라 편의대로 할 것이나 곡식의 반은 항상 창고에 남아 있도록 할 것이며 또 신곡이 들어올 때는 구곡과 신곡을 구별할 수 있도록 서패(書牌)를 달되 봄에 배준할 때는 구곡을 먼저 배분하도록 한다.”
“가을에 창고에 넣는 추적(秋糴)은 대미(大米)로 하되 쌀이 귀한 곳은 벼[租]·조[粟]·콩도 무관하다. 금년의 모조(耗條)는 탕감하되 명년부터 매석당 1두 5승(15%)으로 한다. 사창의 비용은 환곡을 받는 가을에 석당 3승의 색미(色米)를 더 받아 사수의 창고 운영비로 1승을 쓰고 1승은 관청의 문서비용 등으로 쓰도록 한다.”
“계량 단위인 섬[斛]·말[斗]·되[升]의 규정은 호조의 기준에 준할 것이며, 가을의 개창일자(開倉日字)는 10월로 할 것이다. 봄·가을의 양곡 배부의 입고 및 재고 상황은 계통 행정기관을 통해 보고받도록 한다.”
“창고의 설치장소는 민원에 따라 수개면이 한 곳에 한 창고를 지어도 무방하며, 관에서 재고조사 등 현지 출장을 나갔을 때는 먹을 것을 스스로 마련해 추호도 민폐를 지지 말도록 한다.” 등이다.
한편, 창고(社倉)를 건립하는 토교지제에서는 창고 설치의 대표적인 설계서를 제시하고 있는데 설계 도면은 없으나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되어 있다.
이 자료는 조선 말기의 환곡 또는 환정(還政)과 양정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