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경주시 배반동에 있었던 신라시대의 사찰인 사천왕사를 관리하였다. 사천왕사는 679년(문무왕 19) 당군(唐軍)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세워졌다. 그 창건지는 왕도의 칠처가람지(七處伽藍址) 중의 하나인 신유림(神遊林)이었으며, 신인종(神印宗)계통의 사찰이었다.
관원으로는 처음은 금하신(衿荷臣) 1인, 상당(上堂) 1인, 적위(赤位) 1인, 청위(靑位) 2인, 사(史) 2인이 있었다. 그뒤 759년(경덕왕 18)의 관제개혁 때 사천왕사성전은 감사천왕사부(監四天王寺府)로, 금하신은 감령(監令)으로, 상당은 경(卿)으로, 적위는 감(監)으로, 청위는 주부(主簿)로, 사는 전(典)으로 개칭되었다.
그러나 776년(혜공왕 12) 다시 원상복구되었다가 애장왕대에 금하신은 영(令)으로, 상당은 경으로 개칭되었고 청위는 대사(大舍)로 개칭되면서 관원수도 1인으로 줄였다. 금하신이 될 수 있는 관등은 대아찬(大阿飡)부터 각간(角干)까지이고 상당은 나마(奈麻)부터 아찬까지이며 청위는 사지(舍知)에서 나마까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