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선진리성(船津里城)에 주둔하고 있던 왜적을 몰아내기 위하여 결전을 벌이다가 희생된 조명연합군(朝明聯合軍) 군사들의 넋이 잠든 곳이다.
당시 일본은 1592년 4월 조선을 침략하였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강화교섭을 3년간 끌다가 결렬되자 1597년 1월에 다시 침략하여 북진하려 하였으나 육지에서는 직산(稷山) 부근의 소사전투(素沙戰鬪)에서, 해상에서는 명랑해전(鳴梁海戰)에서 패배하였다.
이에 왜군은 서둘러 경상도 남해안지방으로 물러나 울산에서 순천에 이르는 남해안 곳곳에 성을 쌓거나 수축하여 머무르고 있었다.
이러한 때 사천 지방에서는 왜장 시마즈(島津義弘)의 군사가 성을 수축하고 주둔하고 있던 중, 명나라 중로제독(中路提督) 동일원(董一元)과 경상도우병사(慶尙道右兵使) 정기룡(鄭起龍) 휘하의 3만 여명이 진주를 거쳐 사천구성(泗川舊城)의 왜적을 무찌른 후 이 곳 선진리성까지 적을 몰아내려고 하였으나 아군진지에서 발생한 불의의 화재로 인하여 그 희생자수가 수천에 달하였다.
이 때 적은 그들의 전과를 본국에 알리기 위하여 전사한 조선과 명나라 군사들의 코를 베어 본국으로 보내고, 목을 베어 선진리성 밖에 사방 20칸 되는 땅을 파서 큰 무덤을 만들었다.
이 무덤의 형태는 방형(方形)으로 흔히 ‘당병(唐兵)무덤’ 또는 속칭 ‘댕강무데기’라고 불렸는데, 해방 전까지는 무덤 위에 ‘唐兵供養塔(당병공양탑)’이라 쓰인 높이 1m 가량의 표석(標石)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전몰(戰歿) 제385주년을 기념하여 1983년 11월 14일 ‘조명연합군전몰위령비(朝明聯合軍戰歿慰靈碑)’를 세우고 그 영혼을 위로하며 해마다 10월 1일에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