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의자왕 때의 대신 사택지적이 남긴 비이다. 1948년 역사학자이자 미술사학자인 황수영(黃壽永)과 홍사준(洪思俊)이 부여에서 발견하여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비는 대좌평(大佐平)을 역임하였던 사택지적이 말년에 지난날의 영광과 세월의 덧없음을 한탄하면서 만든 것이다. 남아 있는 비의 형태는 높이 101㎝, 너비 38㎝, 두께 29㎝이며, 글씨를 쓰기 위하여 정간(井間)을 쳤다. 정간은 정방형으로서 한 변이 7.6㎝이며, 글자의 크기는 평균 약 4.5㎝이다. 그리고 비석 오른쪽에는 원내에 봉황문이 있고 주색(朱色)을 칠한 흔적을 약간 볼 수 있다.
비문의 전문을 보면 “갑인년 정월 9일 나지성의 사택지적은 몸이 날로 쉬이 가고 달로 쉽게 돌아오기 어려움을 한탄하고 슬퍼하여, 금을 뚫어 진귀한 당을 세우고 옥을 깎아 보배로운 탑을 세우니, 외외한 자비로운 모습은 신광(神光)을 토하여 구름을 보내는 듯하고, 아아한 인혜로운 모습은 성명(聖明)을 풀어서 □□한 듯하다(甲寅年正月九日奈祗城砂宅智積慷身日之易往慨體月之難 還穿金以建珍堂鑿玉以立寶塔巍巍慈容吐神光以送雲峨峨悲貌合聖明以).”라고 되어 있다.
이 비문의 문체는 사륙변려체(四六騈儷體)인데 문장이 유려하고 자체가 웅건한 구양순체(歐陽詢體)로서, 당시 백제의 문화 수준을 알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이 비는 문체나 비의 양식이라든가 비문에 나타나는 인물 등으로 보아 비록 단비(斷碑)이기는 하나 백제시대의 귀중한 금석문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