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때의 삭녕현과 승령현(僧嶺縣)을 합한 지역이다. 삭녕현은 본래 고구려의 소읍두현(所邑豆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삭읍(朔邑)이라 고쳐 토산군(兎山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때 지금의 이름인 삭녕이라 고쳤고, 1018년(현종 9) 이웃 승령현과 함께 동주(東州: 지금의 철원군)에 예속시켰다.
승령현은 본래 고구려의 승량현(僧梁縣, 또는 非勿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동량(㠉梁)으로 고쳐 철성군(鐵城郡: 지금의 철원군)의 영현이 되었다가 고려 때에 들어와서 승령현으로 고쳤다. 1106년(예종 1) 비로소 승령현에 감무를 두어 삭녕현과 겸임시켰다.
조선시대는 삭녕현이 신의왕후(神懿王后)의 외향(外鄕)이라 하여 1403년(태종 3) 승격시켜 지군사(知郡事)를 두고 승령현을 합병시켰다. 1414년 안협현(安峽縣)을 합쳐 안삭군(安朔郡)을 만들었으나 2년 뒤 다시 분리시켜 삭녕현으로 복구하였다.
1895년(고종 32) 군(郡)으로 승격하여 개성부(開城府) 관할에 있었으나 다음해 경기도에 이속시켰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내문(乃文) · 인목(寅目) · 마장(馬場)의 3면(面)을 강원도 철원군에 편입시키고 이 밖의 지역은 경기도 연천군에 편입시켰다.
조선시대는 삭녕이 임진강의 지류인 우화강(羽化江)변의 산간분지에 자리잡고 있어 장현(場峴)을 넘어 안협(安峽)과, 우화정진(羽化亭津)을 건너 마전(麻田) · 적성(積城)과 연결되었다. 서쪽으로는 석현(席峴) · 동점(東岾)을 지나 토산(兎山)과, 동쪽으로는 갈마현(渴馬峴)을 통하여 철원과 연결되었다. 당시는 임진왜란 때 전사한 심대(沈垈) · 윤경원(尹敬元) 등을 모신 표절사(表節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