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경문은 사실적이고 회화적인 묘사와, 극히 추상적이고 도식화된 표현의 두 가지 형식으로 크게 구분하여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은·주(殷周)시대부터 청동기 등에 산경문을 묘사하였고, 고대 칠기(漆器)·자수(刺繡) 등에서 산악과 수목의 표현을 추상적인 문양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산과 나무가 묘사되기 시작한 것은 고대로부터 이들 자연물이 토속신앙의 중요한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민간신앙은 마을의 거목이나 산에 신령의 의미를 부여하는 애니미즘적(animism的)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풍경이라는 개념을 가진 산과 나무의 표현이 뚜렷해지는 때는 한대(漢代) 이후이다. 한대 산수 풍경문에 표현된 산과 나무는 신선사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주로 인물이나 동물, 수렵장면의 배경으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한대의 산과 나무는 도안적(圖案的)이고 외경(外景)임을 상징하는 암시적 표현이 나타난다.
우리 나라의 고대 산수화에 나타난 산수 표현은 평면적이고 도식적인 한대 산수표현의 양식과 비슷하다. 그러나 6세기 초의 백제 무령왕릉 출토 은제탁잔(銀製托盞)에서는 또다른 양식이 나타나는데, 여기에서는 대칭형으로 삼산형식(三山形式)의 산악표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대칭형의 산악 표현은 우리나라의 산수화에서는 7세기에, 일본에서는 8세기에 유행하였다.
고구려 고분벽화 중 통구제17호분(通溝第十七號墳)·진파리제1호분(眞坡里第一號墳), 그리고 강서대묘(江西大墓)와 중묘(中墓) 등에서는 좀더 사실적인 묘사로 발전되고 있다. 특히, 진파리제1호분의 경우는 극히 사실적인 표현으로서 나무 등의 묘사에서 육조시대의 양식을 엿볼 수 있다. 내리제1호분(內里第一號墳)이나 강서대묘의 천장벽화에서는 대칭형의 삼산형식이 보이는데, 이러한 경향은 천장에 그려진 천상계(天上界)의 상징을 보여 주는 신선사상(神仙思想)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백제 문양전(文樣塼) 중에 부여 규암면 출토 산경문전(山景文塼)에서는 역시 삼산형식의 산악과 암산 등이 도식적이면서도 매우 신비스러운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이 문양전은 거의 정방형이며 네 모퉁이에 홈이 패어 벽면장식 타일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그 문양은 다른 전의 문양처럼 대칭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삼산형의 토산(土山)은 둥글게 능선으로 연결되었고, 그 능선을 따라 버섯모양의 소나무를 표현한 것이 매우 한국적인 인상을 준다. 이러한 산경문은 귀형문전(鬼形文塼)에도 배경이 되고 있다.
산경문이 상징적으로 표현되던 삼국시대의 양식은 고려시대 이후에 와서 금공세공(金工細工)이나 상감도자(象嵌陶磁), 또 나전칠기(螺鈿漆器) 등 새로운 공예기법의 착안에 따라 좀더 사실적이면서도 단조로운 선조(線條)로 바뀐다.
특히, 청동은입사정병(靑銅銀入絲淨甁)이나 향로, 그리고 청자상감포류수금문(靑磁象嵌蒲柳水禽文)과 위로수금문(葦蘆水禽文) 등의 버드나무와 물새들, 그리고 배를 탄 인물과 멀리 보이는 산악은 한국의 산경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또, 조선시대의 청화백자(靑華白磁)에서 수묵산수화풍의 문양이 좀더 사실화되는 경향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