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는 국자감의 종9품 산학교수(算學敎授) 2인 외는 품관에 들지 못하고 이속(吏屬)의 일종으로 간주되었다.
산원은 산사(算士)·계사(計史)라는 직명으로 여러 관서에 분산, 소속되어 있었는데, 전자는 삼사(三司)·상서도성(尙書都省) 등 24개 관서에 30인, 후자는 삼사·상서호부(尙書戶部) 등 6개 관서에 7인이 배정되어 있었다. 이들은 국자감 내의 산학(算學)에서 양성되고 명산업(明算業)이라는 잡과시험을 거쳐 관리로 임용되었다.
이 미디어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비스에만 활용하도록 허가받은 자료로서, 미디어 자유이용(다운로드)은 불가합니다.
항목 내용 중 오류나 보충하여야 할 사항을 상세하게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미디어 또는 미디어 설명에 수정하여야 할 사항을 상세하게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대한 문의나 의견을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용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남겨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용 시 아래와 같이 출처를 표시해 주세요.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