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272m이고 주변의 평지보다 120m 높으며 산의 서북쪽 경사면을 둘러 쌓은 것이다. 황토와 응회암의 부순돌을 섞어 다져 쌓은 성벽으로 되어 있다.
동남쪽은 산간분지에 면하여 송화강(松花江)을 건너 동단산(東團山)과 용담산(龍潭山)이 바라다보이고, 북쪽으로는 송화강에 가깝고 넓은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다. 서쪽과 서북쪽으로 높은 산이 있어, 교통의 주요한 길목인 길림분지의 북쪽 출입지에 해당하여 지리적으로 요충을 이루는 곳에 위치해 있다.
성은 남북의 길이 200m, 동서의 길이 58m로서 겨우 258m의 성벽이 잔존하고 있으나, 본래는 보다 길었다고 여겨지고 있다. 성의 동쪽지역이 길림시 최대의 채석장으로 산이 잘리워졌기 때문에 서벽과 북벽의 일부만 남은 것이다.
이 산성은 근처의 용담산성·동단산성과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구조였다고 추측되고, 또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져 용담산성을 중심으로 하는 성의 배치에서 그 위성(衛城)의 역할을 하였다고 여겨지고 있다.
이 성은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기에 고구려가 서북지역의 옛 부여국을 경영하면서, 보다 북쪽의 부여와 물길(勿吉)의 남하에 대비하여 축조한 산성으로 추정하여, 서기 493년의 물길이 부여를 공격한 기록과 서기 478년 물길이 고구려의 10개 부락을 격파했다는 기록과 관련시켜 이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