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원주민의 발상지로 고(高) · 양(良: 뒤에 梁으로 고침) · 부(夫)씨의 시조인 고을나(高乙那) · 양을나(良乙那) · 부을나(夫乙那)의 세 신인(神人)이 솟아났다는 구멍이다. 세 신인은 수렵생활로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살다가 오곡의 씨와 송아지 · 망아지를 가지고 온 벽랑국(碧浪國, 또는 日本國)의 세 공주를 각각 맞이하여 혼인하고 농경생활을 시작하여 삶의 터전을 개척한 인물들이다.
삼성혈은 지상에 팬 세 구멍으로 되어 있는데, 구멍은 품자(品字)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둘레가 6자이고 깊이는 바다까지 통한다고 하며, 나머지 두 구멍은 둘레가 각기 3자인데 오랜 세월이 흐름에 따라 흔적만 남아 있다. 위쪽 구멍은 고을나, 왼쪽 구멍은 양을나, 오른쪽 구멍은 부을나가 솟아난 곳이라 전한다. 1964년 6월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삼성혈은 그 주위가 성역화되어 있다. 그것은 1526년(중종 21) 이수동(李壽童) 목사가 그 주위에 돌 울타리를 쌓고 혈(穴) 북쪽에 홍문(紅門)과 혈비(穴碑)를 세워 삼성의 후예로 하여금 춘추제를 모시게 하고, 매년 11월 상정일(上丁日)에 도민으로 하여금 혈제(穴祭)를 모시게 한 데서 비롯하였다.
그 뒤 1698년(숙종 24) 유한명(柳漢明) 절제사가 혈(穴) 동쪽에 삼을나묘(三乙那廟, 지금의 三聖殿)를 세우게 하고, 1772년(영조 48) 양세현(梁世絢) 방어사가 바깥 담장을 쌓아 소나무를 많이 심게 하고 제전(祭田)을 마련하여 향청(鄕廳)으로 하여금 혈제를 지내게 하였다. 1827년(순조 27) 이행교(李行敎) 방어사가 전사청(奠祀廳)을 창건하고, 1849년(헌종 15) 장인식(張寅植) 방어사가 숭보당(崇報堂)을 세워 오늘의 규모가 갖추어졌다.
현재 제례는 향교의 석전(釋奠)과 같이 제복을 갖추어 매년 봄(4월 10일)과 가을(10월 10일)에 삼성전에 삼성의 후손들이 모여 춘추대제(春秋大祭)를 지낸다. 삼헌관은 고 · 양 · 부 3성씨가 윤번제로 한다. 매년 12월 10일에는 삼을나의 탐라개벽을 기려 봉향하는 건시대제(乾始大祭)가 제주도민제로 열린다. 초헌관은 도지사, 아헌관과 종헌관은 기관장이나 유지 중에서 선임한다. 춘추대제(春秋大祭)는 삼을나 위패를 모신 삼성전에서 지내고, 건시대제(乾始大祭)는 삼성혈단에서 지내므로 혈제라고도 한다. 1997년에는 1735년(영조 11년)에 제주목사 김정이 세운 삼사석비(三射石碑)를 발굴하였다. 삼성혈은 국가 소유가 아니어서 재단법인에서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