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본. 순한문체. 고광순의 생가 재종질인 재연(在淵)의 부탁을 받고 고광렬이 지었으며, 「녹천공행장(鹿川公行狀)」 · 「인봉공행장(麟峰公行狀)」 · 「의병장이대극전(義兵將李大克傳)」 등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녹천공행장」에서는 글을 집필하게 된 동기와 고광순의 조상 행적을 소개하고 있으며, 이어서 그의 어렸을 때 품격과 용태를 적고 있다. 또한, 고광순의 의병 기록이 수록되어있다.
고광순은 그의 족조(族祖) 되는 고제량과 같이 의병을 일으키기로 맹세하고 1906년 4월 최익현(崔益鉉)과 이어 기우만(奇宇萬) · 백낙구(白樂九) 등을 찾았으나, 적에게 이미 붙들려 간 뒤여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때 고종으로부터 호남의병 대장으로 임명한다는 밀지(密旨)를 받은 고광순은, 같은 해 12월 고제량과 함께 의기(義旗)를 저산분암(猪山墳庵)에 세우고, 고광훈(高光薰) · 고광수(高光秀) · 고광채(高光彩) · 윤영기(尹永淇) · 박기덕(朴基德) 등을 참모로 삼아 의병을 일으켰다.
한편, 고광순 의진은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의 양한규(梁漢奎) 의진과 합세하여, 남원 지역의 적을 쳤으나, 불행히 양한규는 전사하고 고광순은 후퇴하고 말았다. 그 뒤 고광순은 호서의병장(湖西義兵將) 김동신(金東臣), 고제량 등과 함께 구례 연곡사(燕谷寺)의 전투에서 장렬하게 순국하였다는 전말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인봉공행장」에는 고제량의 조상에 대한 기록과 성장 과정 및 1906년 고광순과 함께 의병을 일으킨 뒤, 1907년 연곡사 전투에서 순국할 때까지의 의병 활동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의병장이대극전」에는 이대극이 1896년 의병을 일으켜 영광 지역의 적을 격파한 뒤, 문수사(文殊寺)에서 기삼연(奇參衍)을 추대하여 맹주로 삼고, 휘하에 들어가 각지에서 역전하였다.
그러던 중 기삼연이 순국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한때 실신 상태에 빠졌으나, 다시 좌우의 추대를 받아 맹주가 되어 일본군에 항쟁하였음을 전하고 있다. 또한 일본이 그에게 건 현상금에 눈이 어두운 사람에게 잡혀 참혹한 최후를 마쳤다는 기록이 자세히 적혀 있다.
이 책은 한말 의병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의 하나로, 원본은 고광순의 증손인 영준이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