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6년(인종 14)서경기(西京畿)를 나누어 6현을 만들 때 금당(金堂)ㆍ호산(呼山)ㆍ칠정(漆井)의 3부곡(部曲)을 합하여 삼화현을 만들고 현령을 두었다. 그 뒤 원나라의 지배를 받을 때 황주(黃州)의 영현으로 되었으나 충렬왕 때 현으로 복구되었다.
조선시대도 그대로 따르다가 1686년(숙종 12) 도호부로 승격하고, 1895년(고종 32)삼화군(三和郡)이 되었다가 용강군에 편입되어 삼화면이 되었다. 삼화의 지명은 세 개의 부곡을 합쳤다는 데서 나온 듯하다.
이곳은 대동강 하구에 자리잡고 있어 평안도와 황해도를 방어하는 군사적 요지이므로, 해안가의 광량진(廣梁鎭)은 독진(獨鎭)으로 도호부사가 겸임하였다. 우산(牛山)과 대당두산(大堂頭山)에는 봉수가 있어 서해안을 연결하였다.
이 지역에는 고구려의 고분이 산재되어 있는데, 쌍영총(雙楹塚)ㆍ성총(星塚)이 유명하다. 삼화는 예로부터 고려자기 생산지로 유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