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 때 안으로는 자갈돌 같은 받침을 대고 밖으로부터 노끈을 감거나 노끈무늬·격자무늬를 새긴 방망이로 두드려 표면에 노끈무늬·격자무늬를 나타나게 한 다음 같은 간격의 평행선을 둘러 돗자리 비슷한 삿자리무늬를 만들고 있어 종래 승석문토기(繩蓆文土器)라고 불렀다. 최초의 보고서가 간행된 김해조개더미의 이름을 따서 흔히 김해토기라 부르기도 한다. 김해조개더미에서는 연질(軟質) 또는 경질(硬質)의 회색·적갈색 때린무늬토기 등 여러 민무늬토기가 나왔지만, 좁은 의미에서 김해토기는 삿무늬가 시문된 경질회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회색토기는 종래의 민무늬토기에 중국식 회도의 기법이 가미되어 생겨난 토기로 보고 있다.
이 토기에 보이는 새로운 기법으로는 정선된 바탕흙[胎土]의 사용과 더불어 기존의 노천요(露天窯)와는 다른 폐쇄요(閉塞窯), 즉 지붕을 가진 실요(室窯) 또는 터널식 요의 사용을 들 수 있다.
산소의 공급이 많은 노천요에서 토기를 구우면 흙 속의 철분이 산화되어 산화제이철(Fe₂O₃)로 변해 색상이 적갈색이 된다. 그러나 산소공급을 제한한 폐쇄요에서는 철분에 들어 있던 산소가 빠져나가(還元) 철은 산화제일철(FeO)로 돼 색상이 회색 내지는 회청색이 된다.
따라서 이 토기는 노천·개방요식 소성법(酸化焰)에서 폐쇄식 소성법(還元焰)으로 발전하면서 색상이 적갈색에서 회색으로 변해간 것이다.
제작방법에 있어서는 물레의 사용 흔적은 보이나 발로 차서 돌리는 정식 물레가 사용된 적극적인 증거는 없고, 손으로 돌리는 간단한 돌림판(turn-table)을 써서 구연부 따위를 마무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토기는 종래의 적갈색토기에서 회색토기로, 즉 물기가 스며드는 토기에서 물기가 스며들지 않는 석기로 발전한 토기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토기를 신라토기의 기원으로 보기도 하며, 선사시대에서 삼국시대 전기로의 전환을 기록하는 하나의 지표로 삼기도 한다.
기형의 종류로는 납작 밑의 넓은 입[廣口]항아리, 화분형 항아리, 둥근 밑의 넓은 입항아리, 굽다리 대야형 그릇, 굽다리접시[高杯], 시루 등이 있다.
삿무늬가 시문된 토기에는 이처럼 김해식 토기로 통칭되는 회청색경질토기 외에도 적갈색연질토기·회백색연질토기 등이 있다. 또 토기에 따라서는 한 토기 내에 삿무늬 외에 문살무늬가 부분적으로 시문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