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이천(利川). 호는 화운(華雲). 충청북도 괴산 출생. 아버지 서명환(徐明煥)과 어머니 연안이씨(延安李氏)의 2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9세 때 서봉환(徐鳳煥)에게 출계(出系)하였다.
이천의 모가공립보통학교를 마친 뒤 1930년에 인천공립상업학교에 진학하였다. 1939년 3월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경성상업실천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45년 8월 광복과 동시에 일본인 이마노[今野道夫]로부터 경성상업실천학교의 경영권을 인수하였고, 29세의 젊은 나이에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당시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 있었던 이 학교는 1947년 8월 마포구 대흥동의 현 교사로 옮겨와 오늘의 숭문중고등학교의 초기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는 교육을 “국가민족의 앞날을 가름하는 역사적 과업이며, 혼탁한 사회조류를 막을 수 있는 최후의 아성”이라고 강조하면서 교육풍토의 개선과 교권확립 및 양심적인 학교경영을 소신으로 삼았다.
그의 교육이념은 인간·의리·지성·친애에 두었으며, 특히 그는 ‘목숨을 버리더라도 의(義)를 좇음(捨生取義)’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였다.
1968년 9월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연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대한교육연합회 부회장, 한국사학재단연합회 부회장, 서울특별시 교육위원회 부회장, 사립중등학교 윤리위원회 초대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0년 대통령 표창, 1973년 교육부문 5·16민족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