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묘소는 서성과 부인 여산송씨와의 합장묘로, 경기도 포천시 설운동 도로변 야산에 위치한다. 묘역 입구 오른쪽에 신도비와 비각이 있고, 봉분 주위는 곡장을 조성했으며, 봉분은 호석을 둘렀다. 봉분 앞에는 묘비, 혼유석, 상석, 향로석이 있고, 좌우에 망주석, 문인석 등의 석물이 있다. 뒤편에는 현대식 건물로 재실이 갖추어져 있다.
서성(徐渻, 1558~1631)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현기(玄紀), 호는 약봉(藥峯),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대제학 서거정(徐居正)의 현손이며 이이(李珥)와 송익필(宋翼弼)의 문인이다. 5개도의 관찰사와 3조의 판서를 지냈으며, 역학(易學)과 서화(書畵)에 뛰어났다.
묘소는 뒤쪽으로 곡장을 둘렀는데 곡장은 사고석을 쌓아 만들었다. 봉분은 호석(護石)을 높게 두른 다음 봉토(封土)하였다.
봉분 앞에는 묘비, 혼유석(魂遊石),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이 있으며, 상석을 중심으로 장대석(長臺石)으로 계절(階節: 무덤 앞에 평평하게 만들어 놓은 땅)을 만들고 양끝은 곡장의 끝과 연결시켰다. 배계절(拜階節: 계절 밑에 절을 할 수 있게 평평하게 만든 땅)에는 망주석(望柱石)과 문인석이 좌우로 각각 한 쌍씩 배치되어 있다. 문인석은 투구를 쓴 것으로 보이는데, 현대에 와서 비무장지대의 집안 묘역에 있는 것을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 한다.
묘역 아래에는 가첨석(加檐石)을 갖춘 신도비가 있다. 1646년(인조 24)에 세워진 이 비는 김상헌(金尙憲)이 비문을 짓고, 오준(吳竣)이 글씨를 썼으며, 김광현(金光炫)이 전액(篆額)을 쓴 것이다. 비문은 김상헌의 문집인 『청음집(淸陰集)』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 묘역의 곡장·호석·봉분 앞의 묘비는 1968년에 후손들이 신축 및 보수를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