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우사범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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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초등교원 양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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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07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초등교원 양성학교.
내용

1906년 10월 황해도와 평안도 등 서북 출신 애국지사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서우학회(西友學會)는 교육 구국(敎育救國)을 위해서 무엇보다 유능한 교원의 양성이 시급함을 깨달아 1907년 1월 서우사범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의 수업연한은 1년이며 사범 속성과 야학교였다.

초대 교장에 박은식(朴殷植), 교감에 김달하(金達河)가 취임하였으며, 교사에 주시경(周時經) 등 5명이 있었다. 입학자격은 25∼40세의 한문에 소양이 있는 자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야학교로 운영되었다.

교과목은 산술·지리·역사·법률·물리학·교육학·영어·일어·작문 등이었다. 설립 당시 조그만 회관을 빌려 교사로 쓰다가, 나중에 설립 대표자인 이갑(李甲)이 대지를 매입하여 교사를 갖추었다. 1907년 11월 회원들의 노력으로 새로운 교육체제를 갖춘 서우학교로 개편하여 교사 양성에 주력하였다.

서우학교 당시 18세 이상을 입학대상으로 하고 한문과 산술을 시험과목으로 하였으며, 기숙사도 마련하였다. 교장에 강장석(姜章錫), 교감에 이기동(李基東), 부교감에 이달원(李達元)을 임명하고 교원도 9명으로 증원하였다.

이들은 모두 서우학회의 회원으로서, 시간강사로 근무하였다. 이 학교는 교육 구국의 이념하에 초등학교 교원을 양성하여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의 각 사립보통학교에 배치하는 것이 설립목적이었다. 그러나 몇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그 뒤 1908년 1월 서우학회와 한북흥학회(漢北興學會)가 통합되어 서북학회(西北學會)로 재조직됨에 따라, 서우학교도 한북흥학회가 설립한 한북의숙(漢北義塾)과 통합하여 서북협성학교(西北協成學校)로 개편되었다. 이에 따라 서우학교는 서북협성학교의 1년제 사범 속성과로 되어, 1908년 4월 속성과 제1회 졸업생 40명이 배출되었다.

서북협성학교는 1910년오성학교(五星學校)로 바뀌었다가 1922년 다시 협성학교로 변경되었으며, 오늘날 광신중학교(光新中學校)와 광신상업고등학교로 발전했다.

참고문헌

『한국근대교육사』(손인수, 연세대학교 출판부, 1975)
『광신구십년사』(광신중상업고등학교, 1995)
『한국개화기의 교원양성연구』(김영우, 창학사, 1984)
『황성신문(皇城新聞)』(1906.12. 25.)
『서우(西友)』 1∼13(서우학회, 1906. 12.∼190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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