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겸 편집인은 장도빈(張道斌)이었다. 제2호는 1920년 2월에, 제3호는 같은해 4월에 발행되었는데, 격월간으로 나온 것은 초창기에 애로점이 많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제4호부터는 이봉하(李鳳夏) 등이 설립한 한성도서주식회사(漢城圖書株式會社) 출판부에서 인수하여 발행하였다. 이 잡지는 3·1운동 후 처음으로 발행된 잡지라는 점에서 큰 뜻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민족출판사업의 깃발을 들고 나온 한성도서주식회사의 첫 출판이 『서울』이었다는 점도 명기될 만한 일이다. 이 잡지는 발행허가를 받았으나 정치·시사 문제를 마음대로 다룰 수 없었던 당시의 사정으로 그 논조는 미온적이었고, 논문의 질도 높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해 9월 발행의 제6호에서 「조선독립운동사건의 전말」·「세계에 대한 조선인의 요구」 등 5편이 사전검열에서 전부 삭제되었고, 12월 발행의 제8호에서도 많은 기사가 삭제되는 수난을 겪고 폐간되었다.
비록 허약하기는 하였으나 스스로를 ‘언론잡지’로 자처한 흔적은 찾을 수 있다. 주간인 장도빈을 비롯한 편집기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편집기획의 산만성과 집필진의 빈약, 독자층의 영세 등으로 신장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