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태원(太原). 자는 중윤(仲潤), 호는 돈암(遯菴). 평안도 태천(泰川) 출신. 아버지는 숭인전 감(崇仁殿監) 선우선식(鮮于鮮寔)이며, 어머니는 경주이씨(慶州李氏)로 어모장군(禦侮將軍) 이억수(李億壽)의 딸이다.
김태좌(金台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38세에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찾아가 이황(李滉)이 남긴 장서 수백 권을 열람하고 돌아오는 길에 장현광(張顯光)을 찾아가 학문을 질문하였다. 그 뒤 많은 제자들이 그를 따랐으며, 일생 동안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1628년(인조 6) 학행으로 사직참봉(社稷參奉)에 임명된 것을 비롯,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성균관사업(成均館司業) 등에 여러 차례 천거되었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치심궁리(治心窮理)와 입현무방(立賢無方)의 도를 내용으로 하는 상소문을 올려 시행하게 하기도 하였다.
심성이기(心性理氣)를 깊이 연구하였으며, 특히 『주역』에 통달하였다. 당대의 석학 김집(金集)과도 학문적인 토론을 교환하였으며, 세상 사람들이 관서부자(關西夫子)라 칭하여 존경하였다.
1883년(고종 20)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평양의 용곡서원(龍谷書院)과 태천의 돈암서원(遯菴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저서로는 『돈암전서(遯菴全書)』 7권 5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