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7년(광해군 9)에 유학(儒學) 한보길(韓輔吉)·박몽준(朴夢俊)·한천정(韓天挺) 등과 함께 이홍로(李弘老)의 심복 이각(李覺)을 죽이고 양사(兩司)를 귀양보내며, 김제남(金悌男)을 역모죄(逆謀罪)로 처형할 뿐만 아니라 서궁(西宮)을 폐출시키라고 여러 차례 연명(聯名)으로 소를 올렸다.
또 서궁폐출에 대한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대신 박승종(朴承宗)·이경전(李慶全)의 탄핵과 유간(柳澗)의 치죄(治罪), 서궁을 폄삭(貶削)하는 절차를 천자에게 상주하여 폐출하도록 하는 소를 연명으로 올렸다. 그러나 1618년 8월, 이전에 올린 소로 말미암아 역적으로 몰려 유생들이 줄지어 서 있는 가운데 처형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