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군 ()

연극
단체
1941년에 설립되었던 동양극장(東洋劇場)의 전속극단 ‘호화선(豪華船)’의 후신.
이칭
이칭
호화선
정의
1941년에 설립되었던 동양극장(東洋劇場)의 전속극단 ‘호화선(豪華船)’의 후신.
연원 및 변천

극단 성군(星郡)은 1936년 9월에 동양극장 전속으로 창단된 극단 ‘호화선(豪華船)’의 후신으로, 1941년 11월에 호화선에서 성군으로 개칭되었다.

단원은 연출부에 홍해성(洪海星)·김욱(金旭), 극작부에 박영호(朴英鎬)·김영수(金永壽)·박향민(朴鄕民), 장치부에 원우전(元雨田), 연기부에 서일성(徐一星)·박고송(朴孤松)·고기봉(高奇峰)·전경희(全景希)·양진(梁進)·박창환(朴昌換)·지경순(池京順)·백근숙(白槿淑)·한은진(韓銀珍) 등으로 거의 호화선 단원 그대로였다.

호화선은 창립공연으로 김영수 작「결혼생태(結婚生態)」, 박영호 작「가족」, 박향민 작「고향」, 이태준(李泰俊) 작·한상직(韓相稷) 각색「딸 삼형제」등을 공연하였다. 동양극장의 같은 전속극단이었던 청춘좌(靑春座)와 번갈아 가며 활발한 공연활동을 벌였으나, 청춘좌보다는 인기가 떨어졌다. 이 때문에 이 극단은 지방공연에 더 힘을 쏟아 1942년부터는 전국 각지와 심지어 멀리 만주까지 순회공연을 가졌다.

이 극단은 1942년 박영호 작·이서향(李曙鄕) 연출「산돼지」와 1943년 김건(金健) 작·한노단(韓路檀) 연출「신곡제(新穀祭)」등으로 연극경연대회에 참가한 바 있다.

의의와 평가

주로 박영호·송영(宋影)·김태진(金兌鎭) 등의 작품으로 특히 동양극장에서 인기를 모았던 작품들을 순회공연하여 상업주의 붐을 일으키다가 광복과 함께 해산되었다.

참고문헌

『한국 근·현대 연극 100년사』(한국 근·현대 연극100년사 편찬위원회, 집문당, 2009)
『한국연극반세기』(강계식, 현대교육출판부, 1986)
『한국연극사-제2기』(서항석, 예술논문집 17, 대한민국예술원,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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