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초명은 성협(成浹), 자는 사열(士悅), 호는 청죽(聽竹). 성완(成琓)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성희주(成希周)이고, 아버지는 감사 성세평(成世平)이며, 어머니는 노공좌(盧公佐)의 딸이다.
일찍부터 성리학에 뜻을 두어 형 성호(成浩)와 함께 남언경(南彦經)에게 수업하여 학문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이이(李珥)·성혼(成渾)을 사사하였다.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연구에 몰두하였고 의학에도 밝아 많은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였다.
구언령(求言令)이 있을 때마다 수천언으로 진소(陳疏)하였으며, 임진왜란 후에는 처가인 상주에 거처하면서 조익(趙翊)·정경세(鄭經世)·이준(李埈) 등과 교유하였다. 벼슬은 효릉참봉(孝陵參奉)에 임명된 이래 장원·별좌·공조좌랑·무주현감을 역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