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세창 제시 미원계회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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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세창 제시 미원계회도
성세창 제시 미원계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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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0년(중종 35)에 미원(薇垣 : 사간원) 관리들의 계회(契會)를 그린 계회도.
정의
1540년(중종 35)에 미원(薇垣 : 사간원) 관리들의 계회(契會)를 그린 계회도.
개설

198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수묵이며 족자 형식이다. 크기는 세로 93㎝, 가로 61㎝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문인계회도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족자 상단에 “미원계회도(薇垣契會圖)”라는 전서체(篆書體)로 쓴 제목이 있고, 중단에 산수를 배경으로 계회의 장면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하단에는 참석자들의 좌목(座目)이 기록되어 있는데, 조선 초기 계회도의 전형적인 형식이다.

좌목에 적혀 있는 참석자의 명단은 유인숙(柳仁淑, 1485~1545), 홍춘경(洪春卿, 1497~1548), 이명규(李名珪, 1497~1560), 나세찬(羅世纘, 1498~1551), 이황(李滉, 1501~1570), 김□(金□), 이영현(李英賢, 1507~1572) 등 7명이다. 미원(薇垣)은 사간원(司諫院)의 별칭이어서 사간원 관리들의 계회임을 알 수 있다. 그림에 성세창(成世昌, 1481~1548)의 찬시(贊詩)가 적혀 있고, “가정경자중춘(嘉靖庚子仲春)”이라는 연기가 있어 1540년(중종 35)에 제작되었음이 확인된다.

내용

화면의 근경에 두 그루의 소나무가 서 있는 언덕이 있고, 그 아래 널찍한 터에서 의관(衣冠)을 갖춘 선비들이 둘러앉아 계회를 열고 있다. 산수의 배경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 있게 표현되었다. 이에 비해 계회 장면은 작게 상징적으로만 그려져 있다. 자연을 중시하던 당시의 풍조가 잘 드러난다. 또한 계원들의 옆에 있는 큰 탁자 위에 술동이들이 놓여 있어 자연을 벗 삼아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펴던 조선 초기 선비들의 풍류를 엿볼 수 있다.

이 계회도에 그려진 산수화는 오른편에 치우친 편파구도(偏頗構圖), 확대된 공간, 짧은 선과 점들로 다루어진 산과 언덕의 묘사, 쌍송(雙松)을 비롯한 수지법(樹枝法) 등에 있어서 안견(安堅)의 작품으로 전칭되고 있는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즉 16세기 중엽에 유행하던 안견파의 전통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는 16세기 중엽에 안견파 화풍이 크게 유행하고 있었으며, 그 화풍이 계회도를 비롯한 기록화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의의와 평가

이 계회도는 「성세창제시하관계회도(世昌題詩夏官契會圖)」 (1541년), 「연방동년일시조사계회도(榜同年一時曹司契會圖)」 (1542년) 그리고 일본의 『고화비고(古畵備考)』에 실려 있는 소세양(蘇世讓, 1486~1562) 제찬의 「한성부낭관계회도 (漢城府郎官契會圖) 」 등과 잘 비교된다. 또 16세기에 안견파 화풍을 구사한 기록화의 전형적인 양식과 면모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참고문헌

『한국회화의 전통』(안휘준, 문예출판사, 1988)
『동양의 명화 1 –한국 Ⅰ-』(안휘준 편, 삼성출판사, 1985)
「조선시대 계회도 연구」(윤진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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