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퇴보(退甫), 호는 삼고당(三古堂). 대사헌 성세정(成世貞)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성윤(成倫)이고, 아버지는 황산도찰방(黃山道察訪) 성효관(成效寬)이며, 어머니는 심사공(沈思恭)의 딸이다. 참의 성이문(成以文)의 아우이다.
1595년(선조 28) 별시 문과에 장원급제하였으며, 유학(儒學)으로서의 장원은 좀처럼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주위의 촉망을 받고 시관(試官)을 위하여 경연(慶宴)까지 베푼 일이 있었다.
이듬해 호조좌랑이 되어 명나라 장수 진운홍(陳雲鴻)의 접반관(接伴官)을 겸하였으나, 적의 정세에 관하여 올린 장계(狀啓)로 인하여 물의를 일으킨 바 있었고, 이어 심유경(沈惟敬)이 접반관으로 있을 때는 왜군의 진영(陣營)에서 도망해 온 죄로 유배됨으로써 거듭 어려움을 겪었다.
1606년 공조정랑을 지낸 뒤 한산군수로 전임, 승계(陞階)되었으나 1609년(광해군 1) 병조정랑의 자리에 천거에 의한 물망에 올랐을 때 능력에 맞지 않다 하여 왕명으로 물망에서 제외되는 등 벼슬길이 순탄하지 못하였다.